1. 에스라 당시 남북 이스라엘의 배경
(1) 북이스라엘
북이스라엘 백성은 앗수르에 포로로 끌려간 후 결코 돌아올 수 없었다. 그들이 민족적 실체로서 계속 존재하지 못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다.
북 왕국에는 유다와는 달리 돌과 흙으로 된 것이든 마음속에 있는 것에든 성전이 없었다.
이스라엘에는 수도 사마리아가 함락된 후 왕족 생존자가 없었다. 사실 그들은 이미 오래전에 다윗 혈통을 잃었으며, 이로 인하여 영원한 왕국의 보좌 위에 "다윗의 아들'이 앉을 것이라는 위대한 예언적 이상이 말살되었다.
앗수르는 대부분의 백성들을 북왕국 밖으로 몰아내고 이방인을 그 땅에 이주시켰다. 이로 인해 남아 있던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들 사인에 잡혼이 이루어지고, 예수님 당시에도 유대인들로부터 그처럼 증오를 받던 혼혈족인 사마리아인이 나타나게 되었다.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앗수르에 있던 이스라엘 포로들 중에는 그들의 종교적, 문화적 동질성을 유지할만한 계속적인 종교적 지도력이나 예배 중심지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 이러한 이유로 그들은 고대 중동의 떠돌이 민족들 속으로 사라졌고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열 지파"가 되었다.
(2) 남유다
왕국의 포로 역사는 이와 달랐다. 주전 586년에 예루살렘 도성을 마지막으로 점령하고 불사른 것은 앗수르가 아니라 바벨론이었고, 정복민에 대한 바벨론의 정책은 매우 달랐다.
바벨론은 포로로 잡혀온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공동체를 이루고 거주하도록 하였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신을 섬기고, 그들 자신의 학교를 운영하며, 그들의 민족적, 종교적 동질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유다는 다윗의 혈통을 왕으로 삼았고, 왕족 역시 백성들과 함께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 이것은 다윗의 후손이 거기에 있어 다윗 왕조의 회복에 대한 소망을 간직할 수 있었음을 의미한다.
바벨론은 앗수르가 사마리아에서 행했던 것과 같이 고의로 유대의 거주민을 교체시키지는 않았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는 언제나 유대인들이 남아 있었고, 바벨론의 포로들도 거룩한 성 예루살렘과 성전을 결코 잊지 않았다.
바벨론, 메디아, 페르시아 제국때까지 활동한 다니엘의 눈부신 업적이 유대인들에게 큰 교훈을 주었다.
우상숭배의 결과는 멸망과 이산이라는 예언이나 70년이 지나면 회복시켜 주겠다는 예언의 성취 등이 그들에게 체험적인 신앙을 안겨 주었고,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깨닫게 해 주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남 유다에는 율법 책을 보존하고 가르쳤던 서기관과 제사장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교사들에게 큰 교훈이 된다.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 교사가 얼마나 중요한 직분인가! 가르치는 자가 없다면 깨닫는 자도 없게 되고, 생활은 바뀌지 않으며, 결국 운명이 바뀌지 않는 것이다.
- 이러한 이유로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은 "성경의 백성"이 되었고, 그 이전까지 왕과 일부 계층의 신앙이었던 유대교는 비로소 온 유다 백성들의 신앙이 될 수 있었다.
2. 이스라엘의 포로 귀환
(1) B.C.536년 : 바사 왕 고레스 때에 스룹바벨이 성전재건을 위해 49,897명의 유대인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1차로 귀환함.
(2) B.C.516년 : 사마리아의 방해로 16년간 중단되었던 성전 건축이 학개, 스가랴의 촉구로 완공. 초막절 준수, 각종 제사 재개.
(3) B.C.478년 : 바사 왕 아하수에로 때에 에스더가 바사의 왕비가 되어 유대인들을 전멸시킬 하만의 계교에서 유대인을 구출함
(4) B.C.458년 : 바사 왕 아닥사스다 1세 때에 에스라가 유대인 1,754명과 함께 2차 귀환하여 대대적인 영적 부흥운동을 전개함.
(5) B.C.444년 : 바사 왕 아닥사스다 1세 때에 느헤미야가 3차로 귀환하여 52일 만에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함
3. 에스라와 영적 부흥 운동
(1) 이스라엘의 영적 부흥 운동
(느8:1-3) 이스라엘 자손이 그 본성에 거하였더니 칠월에 이르러는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지고 오기를 청하매 (2) 칠월 일일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남자 여자 무릇 알아 들을만한 회중 앞에 이르러 (3)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오정까지 남자, 여자 무릇 알아 들을만한 자의 앞에서 읽으매 뭇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느8:5-6) 학사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저희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6) 에스라가 광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느니라
(느8:9)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느8:13-14) 그 이튿날 뭇백성의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여 학사 에스라의 곳에 모여서 (14) 율법책을 본즉 여호와께서 모세로 명하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은 칠월 절기에 초막에 거할지니라 하였고
(느9:1-2) 그 달 이십 사일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를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2) 모든 이방 사람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열조의 허물을 자복하고
종교력으로 7월이면 태양력으로는 9월에서 10월이다. 이스라엘의 9-10월은 아직 무더운 때인데 그들은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새벽부터 모여서 오정까지 말씀을 들었다. 말씀을 듣기 좋은 장소도 아닌데 그들은 무려 몇 시간을 그렇게 말씀을 들은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도 말씀을 듣기를 원했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 초막절을 지켰으며, 그 기간 내내 성경을 공부했다. 결국 그들은 금식하며, 굵은 베를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그들의 죄를 자복하고, 이방인과 절교했다. 그들의 아내, 며느리들을 내 보낸 것이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대 회개 운동이 시작되었고, 그 중심에는 에스라가 있었다.
(2) 이스라엘의 영적 부흥을 일으킨 에스라의 비결은 무엇인가?
에스라 (도움) : 학사 겸 제사장 - 아닥사스다왕의 칭찬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학사 겸 제사장(에스라7:12).
(스7:10)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그는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말씀에 대한 은사가 있는 사람이었다. 전승에 의하면 소실된 구약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다시 기록했다는 말까지 있을 만큼 말씀에 대해서는 대단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한 은사가 있었음에도 그는 율법을 끊임없이 연구하였다. 재능이 있다 할지라도 그 재능은 갈고 닦지 않으면 안된다. 무딘 철 연장 날을 갈지 않으면 힘이 더 든다(전10:10). 무디는 스펄젼의 설교를 듣고 “주여! 가르쳐 주옵소서”라고 탄원했다. 그리고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그는 후에 “구원받기 전에 무식했던 것은 부끄러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구원 받은 후에도 무식할 권리는 없다.”고 말했다. 무식했지만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께 크게 쓰임을 받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훌륭한 재능이 있으나 연마하지 않음으로 쓰임을 받지 못한 사람도 있다. “저의 칼날을 둔하게 하사 저로 전장에 서지 못하게 하셨으며” (시89:43).
(시119:14-16)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 같이 주의 증거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 (15) 내가 주의 법도를 묵상하며 주의 도에 주의하며 (16) 주의 율례를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
(시119:97)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시119:147-148) 내가 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148)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
그는 율법을 연구할 뿐 아니라 준행하는 자였다.
(행1: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눅11:27-28) 이 말씀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가로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도소이다 하니 (28) 예수께서 가라사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요일 2:5)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요7:17)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려는 동기로 성경을 연구할 때에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깨달을 수 있게 된다. 만일 그가 가르치려고 성경을 공부했다면 그는 외식하는 바리새인이 될 것이다.
(롬2:21)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마23:1-3)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구약의 율법을 총 정리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이다.
에스라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였다.
그는 왕의 총애를 입어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얻을 수 있었지만 그러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여정에 왕의 도움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다. 그는 예루살렘에 올라가기 전에 사람들을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평탄한 길을 구했으며, 결국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었다. (에8:21-30)
에스라는 사람을 사랑하는 자였다.
이방 결혼을 함으로써 범죄한 이스라엘을 보고 그들을 판단하고 꾸짖기 이전에 그는 그들의 죄에 대해 슬퍼하고 통탄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그들이 죄를 범했다.” 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우리가 범죄했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이스라엘이 형제이며, 한 지체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눈물로 훈계함으로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아 자신들의 죄에서 돌아섰다.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스라엘은 한 사람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모두가 형제인 유일한 국가이다. 즉 그들은 한 몸이다. 그래서 형제를 사랑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들은 육신적인 혈통을 가진 형제이지만 우리는 한 믿음 아래서 낳은 한 지체이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예수님의 형제이다. 그들을 사랑하라!
과거 2002년 하계수양회 준비 봉사할 때에, 농고에서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3:16)”는 말씀을 듣고, 목숨까지 버릴 수 있을까? 라고 했더니 한 형제님이 “지금 위험하지 않은 때이니까 그렇지 막상 우리 형제 중 한 명이 생명이 위험하게 되면 누군들 달려가서 대신 죽어주지 않겠습니까!”라고 하더라! 그 말을 듣고 “과연 나도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한 몸이라는 생각이 없다면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타인의 죄에 대한 그의 태도. 자복 기도. 우리. 이스라엘은 한 민족. 우리도 하나이다. 우리는 교회의 한 지체이다. 교회의 지체 중 일부가 범죄했을 때에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그들의 죄를 나의 죄로 바라보아야 한다. 눈이 잘못하여 머리를 다쳤을 때, 머리가 손에게 일러 바치고, 손이 달려가서 눈더러 왜 그런 잘못을 했느냐고 치는가? 다리는? 내 알바 아니니 나는 나의 길을 간다고 하는가? 보통 사람이라면 가던 길을 멈추고 손으로 머리를 감쌀 것이다. 눈에게 왜 그랬느냐고 일절 말하지도 않는다. 눈이 잘못했으니 눈을 빼 버려야 한다고 하지도 않는다. 다만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하겠다고 생각한다. 눈도 반성을 많이 했을 것이다. 교회는 한 몸이고 우리 각자는 한 지체임을 잊지 말자.
(행20:31)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렘9:1)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그렇게되면 살륙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곡읍하리로다
(시119:136) 저희가 주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내 눈물이 시냇물 같이 흐르나이다
듣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친 자였다.
(느8:7-8) 예수아와 바니와 세레뱌와 야민과 악굽과 사브대와 호디야와 마아세야와 그리다와 아사랴와 요사밧과 하난과 블라야와 레위 사람들이 다 그 처소에 섰는 백성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는데 (8)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으로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준행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분명한 뜻을 알았고 이를 타인에게 알려주려고 하는 간절한 마음이 올라왔다. 즉 하나님께 받은 것이 있었으므로 주려고 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율법을 낭독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당시 구약 성경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는데, 유대인들은 바벨론 70년 포로생활동안 히브리어는 거의 죽은 언어가 되어 버렸다. 그러므로 그 성경을 단지 낭독만 한다면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이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에스라는 이를 알고 성경을 낭독할 뿐 아니라 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석하고, 깨닫게 해 주었다. 그들이 이해하기 쉽게 전한 것이다. 교사 역시 단지 성경을 낭독해서는 아이들을 변화시킬 수 없다. 한 구절이라도 분명하게 해석하고 전달해서 그들이 알아듣고, 깨닫게 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 일에는 또 다른 노력이 있어야 한다. 피아노 교사가 피아노를 잘 치는 것과 그에게 배운 내 아이가 피아노를 잘 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부모가 학원비를 지불하는 것은 내 아이가 얼마나 피아노를 잘 치게 되는가 하는 문제 때문이다. 교사가 많이 아는 것과 배우는 학생들이 그것을 깨닫는 것은 전혀 별개인 것이다.
(고전14:9)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서 알아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고전14:16-17)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무식한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17) 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
그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결심한 자였다.
에스라는 현재의 좋은 위치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고 말씀으로 백성을 세우기로 결심한 자였다. 선한 일을 하기로 결심한 자였고, 하나님은 그 선한 일이 이루어지게 해 주셨다.
예수님의 결심 - 예루살렘에 올라가시기로 굳게 결심하심 (눅9:51)
다니엘의 결심 -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단1:8).
에스더의 결심 - 죽으면 죽으리이다 (에4:16).
다윗의 결심 -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내 심령으로 찬양하리로다 (시108:1) <끝>
에스라와 포로 귀환
(렘 16:14-15)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러나 보라 날이 이르리니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북방 땅과 그 모든 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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