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대적 배경
유대 왕국의 마지막 시대로 접어든 B.C. 640년경부터 왕국 분열 후 유다 역사상 가장 부흥했던 시기인 B.C. 609년까지를 주활동 배경으로 한다. 당시의 대외 정세는 남유다를 계속하여 위협하던 앗수르의 세력이 매우 약화된 때 였다. 즉 앗수르는 무리한 대외정복 정책으로 국력을 많이 낭비하게 되었고 급기야 B.C. 612년에 바벨론에 의한 수도 니느웨 성 함락으로 멸망한다. 그리고 신흥 바벨론이 앗수를 제치고 새로운 국제 질서의 주도권을 잡고 일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세력이 활발해진 시기는 요시야 왕 말기부터였다. 그러므로 8세에 왕에 오른 요시야 왕 때에는 앗수르의 힘은 약화되었고 아직 바벨론은 대외적으로 큰 영향을 행사하지 못하던 때였다.
◆ 열왕기와 역대기의 차이
열왕기에서는 우상을 제거한 사건을 훨씬 더 세부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왕하 23:4-20) 뿐만 아니라 본문의 사건을 요시야가 율법책을 발견한 사건 이후에 기록하고 있다. 이같은 순서상의 차이는 열왕기서는 지정학적인 배열에 의해서 기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전(율법책 발견)으로부터 시작해서 성읍(우상 제거) 그리고 마지막으로 온 나라(유월절)로 사건을 확대해 나간 것 같다. 반면에 역대기서는 요시야의 종교 개혁 때 발생한 사건을 시간 순서에 따라 배열되었다.
◆ 영적 교훈
1. 요시야의 삶을 통한 교훈
(왕하 21:9) 이 백성이 듣지 아니하였고 므낫세의 꾀임을 받고 악을 행한 것 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열방보다 더욱 심하였더라
(왕하 21:21) 그 부친의 행한 모든 길로 행하여 그 부친의 섬기던 우상을 섬겨 경배하고
-> 요사야의 할아버지 므낫세 왕은 55년간 유다를 통치하였다. 그는 유다 왕들 중 가장 악한 왕으로 평가되었고 요시야의 아버지 아몬 왕도 그 부친의 섬기던 우상을 섬겨 악한 왕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요시야는 우상을 멀리하였으며 도덕적인 타락에도 등을 돌려 16세부터 하나님을 찾기 시작하였다. 가문에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악한 영향력에서 벗어나 하나님 중심으로 삶을 살아가는 얼마나 힘이 들고 어려운지 모른다.
그러나 요시야는 환경과 배경에 영향 받지 않고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찾아 순종한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2. 하나님의 평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대하 34:1) 요시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팔세라 예루살렘에서 삼십 일년을 치리하며
(대하 34:2)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 조상 다윗의 길로 행하여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 유다의 왕들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바로 여호와 앞에서 정직하게 행하였는지에 대한 여부이다. 즉 어떤 정치적 업적보다도 여호와 앞에서 보인 신앙이 가장 중요했던 것이다. 요시야의 삶 자체가 한 마디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개인의 삶에 있어서 신앙생활은 ‘여호와 보시기에’ 라는 관점에서 평가되는 것이다.
(고전 4:3)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고전 4:4)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 바울은 사람의 평가보다는 하나님의 평가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판단 받는 것을 매우 작은 일로 여겼다. 이처럼 사람의 평가보다는 하나님의 평가를 중요하게 생각할 때 사람에게서 오는 비난이나 판단의 말에 마음이 요동되지 않는다. 단지 그 비난의 말을 통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하나님께 맡기게 된다.
(갈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고후 5:11) 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을 권하노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워졌고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워졌기를 바라노라
(살전 2:4) 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요 12:42)그러나 관원 중에도 저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을 인하여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회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요 12:43)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눅 16:14)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눅 16:15)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다른 사람이 나를 바라보는 모습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대부분 과대 포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으로서 생활하고 있느냐이다. 하나님 앞에 있는 “내”가 있음을 늘 인식하는 삶의 자세가 필요하다.
내가 나에 대해서 ‘남이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시는 나’를 올바로 인식할 때 신앙생활을 올바로 할 수 있다.
예화) 코람 데오 ‘하나님 앞에서’
코람 데오란 라틴어 'coram Deo'를 그대로 읽는 소리로 라틴어로 'coram'은 '앞에'라는 뜻을 지니고, 'Deo'는 '하나님'을 뜻한다다. 이 두 단어가 합쳐져서 '하나님 앞에서'라고 말할 수 있지요. 이것은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이 부패했던 중세 신앙가운데 크리스천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이름을 높이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권위 아래 살며, 하나님 안에 사는 삶의 방식을 요약해서 주창했던 말이다. 영어로는 'before the face of God'으로 대신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사람 앞에(coram hominibus)' 잘 보이고 '세상 앞에(coram mundo)' 명예롭고 잘 살기보다 오직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한 뜻을 구하며(롬12;2) 사는 삶일 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진정한 '코람데오 신앙생활'은 '하나님 주의'-하나님의 관점에서, 늘 내 앞에 계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늘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주 앞에서만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도 동일한 믿음을 지켜나가는 삶일 것이다.
2. 우상을 타파한 요시야(20세 - 1차 종교개혁)
(대하 34:3) 오히려 어렸을 때 곧 위에 있은 지 팔년에 그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구하고 그 십 이년에 유다와 예루살렘을 비로소 정결케 하여 그 산당과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만든 우상들을 제하여 버리매
(대하 34:6) 또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시므온과 납달리까지 사면 황폐한 성읍들에도 그렇게 행하여(대하 34:7) 단들을 훼파하며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을 빻아 가루를 만들며 온 이스라엘 땅에 있는 모든 태양상을 찍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더라 -> 요시야는 이스라엘, 유다와 예루살렘 전역에 산재한 우상들을 모조리 제거하는 광범위하고 철저한 종교개혁을 실시하였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서 주님이 정하신 길로 가기 위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먼저 내 삶의 영역에서 우상과 같은 죄를 멀리 버리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단순히 말씀을 듣고 감동받는다고 해서 신앙이 성장되고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내 삶에 만왕의 왕 되신 하나님보다 더 가치 있게 여기고 살아왔던 것이 있다면, 그 모든 것들을 과감히 포기하고 버려야 한다.
(수 24:14)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삼상 7:3)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욥 11:13) 만일 네가 마음을 바로 정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들 때에(욥 11:14) 네 손에 죄악이 있거든 멀리 버리라 불의로 네 장막에 거하지 못하게 하라
(욥 22:23) 네가 만일 전능자에게로 돌아가고 또 네 장막에서 불의를 멀리 버리면 다시 흥하리라
(잠 3:7)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사 1: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사 1:17)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요일 5:21)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
(골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골 3:6)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골 3:7)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골 3:8)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골 3:9)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찬송가 102장>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3. 성전을 수리함 (26세)
(대하 34:8) 요시야가 위에 있은 지 십 팔년에 그 땅과 전을 정결케 하기를 마치고 그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수리하려 하여 아살랴의 아들 사반과 부윤 마아세야와 서기관 요아하스의 아들 요아를 보낸지라 ->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인 동시에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곳이고(왕상 6:12)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축복하시는 곳이다. 요시야는 6년이라는 기간에 걸친 끈질긴 종교개혁으로 나라 안의 우상들을 거의 깨끗이 청소해 버렸다. 그리고 숨 돌릴 틈도 없이 하나님의 전을 수리하는 일에 돌입했다. 철저한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겠다는 요시야의 의지, 결단과 헌신이 담겨져 있다. 우리도 언제나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이 내 삶의 전부, 중심이 될 수 있도록 살아야 한다. 주님이 내가 전부였던 것처럼..
(롬 14: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롬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빌 1: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잠 3: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잠 3: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4. 율법책의 발견과 대각성
1) 성전을 수리할 때 율법책이 발견되었다.
(대하 34:14) 무리가 여호와의 전에 연보한 돈을 꺼낼 때에 제사장 힐기야가 모세의 전한 여호와의 율법책을 발견하고-> 왜 여호와의 율법책이 요시야 왕 시대에 발견되게 하였을까? 이유는 요시야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기 위해서 성전을 수리했기(하나님의 뜻을 행함)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교회(하나님의 전)에서 봉사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새롭게 깨달아지는 역사가 지금도 있다. 언제 성경이 많이 깨달아지는가? 자기의 역할을 교회 내에서 진실히 행했을 때에 가장 많은 성경 말씀이 마음에 와 닿고 깨달아진다. 아무 봉사의 직분도 없고 희생하는 아무 일도 없는 사람보다는 자기의 직분을 충실히 하는 가운데 교회 내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교회에 대한 애착 없이 아무런 희생하는 것이 없이 주일만 교회에 왔다 갔다 하면 틀림없이 교회당 문을 나갈 때에 마음 속에 가져가는 것이 적을 것이다.
* 말씀을 깨닫기 위한 자세
① 숨은 죄가 없어야 한다. 즉 마음이 깨끗해야 한다.
(단 12:10)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케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시 18:24)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갚으시되 그 목전에 내 손의 깨끗한 대로 내게 갚으셨도다(시 18:25)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시 18:26)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특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리심을 보이시리니
(시 51:6)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
(히 12:14)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②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렘 29:12)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렘 29:13)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잠 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행 17:11)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잠 2:1) 내 아들아 네가 만일 나의 말을 받으며 나의 계명을 네게 간직하며(잠 2:2)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잠 2:3)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잠 2:4) 은을 구하는 것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인 보배를 찾는 것같이 그것을 찾으면(잠 2:5)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③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사모해야 한다.
(시 19:10)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시 19:14)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시 119:72)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승하니이다
(시 119:127) 그러므로 내가 주의 계명을 금 곧 정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
(욥 23:12)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
④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해야 한다.
(요 14: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 7:17)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시 143:10)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케 하소서 주의 신이 선하시니 나를 공평한 땅에 인도하소서
(신 29:29)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
⑤ 하나님을 경외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
(마 11: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마 11: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마 11: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시 25:12)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뇨 그 택할 길을 저에게 가르치시리로다
2) 말씀을 듣고 난 후 요시야의 반응 “자기 옷을 찢더라”
(대하 34:19) 왕이 율법의 말씀을 듣자 곧 자기 옷을 찢더라
(대하 34:27) 내가 이곳과 그 거민을 가리켜 말한 것을 네가 듣고 마음이 연하여 하나님 앞 곧 내 앞에서 겸비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 서기관 사반은 힐기야가 발견한 율법책을 왕의 앞에서 큰 소리로 읽었으며, 그 말씀을 겸손히 듣고 있던 요시야 왕은 탄식하며 겉옷을 찢었다. 겉옷을 잡아 찢는 행위는 마음의 고통과 슬픔, 그리고 회개를 상징적으로 하는 표현하는 행위이다. 그 말씀을 듣고 지금까지 그의 조상들이 여호와 앞에 행한 반역과 불순종을 깨달았으며, 앗수르에 의해 멸망한 북이스라엘의 선례를 떠올리면서 남유다 역시 하나님께 반역하고 지속적으로 죄를 범함으로 북이스라엘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생각에 너무나 가슴이 아파 입고 있던 겉옷을 잡아 찢으며 회개하였던 것이다. 그는 비록 자신이 여호와 앞에 악행을 하지 않았지만 그가 통치하는 남유다의 누적된 범죄로 인해 심판이 필연적임을 깨닫고 왕 된 자로서 통회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요시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즉각 회개하고 변화를 일으켰다. 우리에게 요시야와 같은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죄를 발견하면 우리의 마음을 찢고 하나님께 돌이키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의 삶 전체에 대한 방향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돌이키는 것이 필요하다.
(행 2:37)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계 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시 139:23)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시 139:24)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3) 요시야의 언약
(대하 34:24)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곳과 그 거민에게 재앙을 내리되 곧 유다 왕 앞에서 읽은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대로 하리니 -> 훌다의 입을 통해 확인된 하나님의 뜻은 요시야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 알게된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전혀 듣고 싶지 않은 힘든 내용 일수도 있다. 하지만 요시야는 자기 맘에 들든 안 들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있는 신앙이 있었다. 아마 하나님도 그렇게 판단하셨기에 요시야에게 이 계시를 정확히 주셨을 것이다. 진실을 감당할 만한 그릇이었기에 하나님이 진실을 알려 주신 것이 아니었을까?
(대하 34:30)이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매 유다 모든 사람과 예루살렘 거민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모든 백성이 무론노소하고 다 함께 한지라 왕이 여호와의 전 안에서 발견한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무리의 귀에 들리고 (대하 34:31) 왕이 자기 처소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언약의 말씀을 이루리라 하고
(대하 34:33)이와 같이 요시야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모든 땅에서 가증한 것을 다 제하여 버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으로 그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게 하였으므로 요시야가 사는 날에 백성이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 복종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 요시아와 온 백성들은 그 자리에서 서약하고 그 증거로 아직 남아 잇는 우상의 잔재들을 나라 곳곳에서 제거하는 일에 헌신했다. 그리고 요시야가 살아 있는 동안 유다 국민들은 그렇게 거룩한 백성들로 살았다. 한 명의 거룩한 지도자를 통해 나라가 완전히 바뀌고, 한 시대가 완전히 바뀌어 버린 것이다.
요시야는 적어도 자기 대에서만이라도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노력으로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게 하고 싶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이미 하나님이 멸망시키라고 작정한 나라야, 내가 뭘 해도 헛수고일 텐데 뭐” 하며 체념해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요시야는 그래도 자신을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절망 중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최대한 소망의 불을 켜 든 것이다. 우리도 부정적인 상황만 보고 체념해 버리지 말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거룩한 몸부림을 쳐 보자! 암울한 현실(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위대한 일을 하실 것을 믿고 주어진 일에 충성을 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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