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나님을 버린 유다
남 16대왕 요시야는 여러 가지 신앙 개혁을 통해 다윗 왕국의 영광을 부분적으로나마 재현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개혁은 백성의 뿌리까지는 뒤흔들지 못했다. 결국 31년간의 요시야의 수고는 그의 사후, 아들 여호아하스에 의해 3개월만에 무너지기 시작했고, 그의 또 다른 아들과 손자는 결국 남유다를 패망으로 이끌고 만다.
겨우 지탱되어오던 유다가 결국 망하게 되었고, 그들은 무시무시한 포로 생활의 고통스런 운명속으로 진입하게 된다.
유다의 마지막 4왕들이 모두 같은 길을 걸었다. 그들은 모두 살아계신 하나님과 그 말씀을 버렸다. 그들은 심판을 경고하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다. 그리하여 그들은 결국 버림을 당했다.
네 왕 중 둘은(17대 여호아하스, 19대 여호야긴) 단지 약 3개월만을 통치했다.
그들은 영광 없는 풀이었다.
네 왕 중 하나는(17대 여호아하스) 애굽으로 끌려갔고, 셋은(18대 여호야김, 19대 여호야긴, 20대 시드기야)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경건한 아버지 요시야 아래서 태어난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김은 경건하지 못했다.
그들은 경건을 배우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의 죄성을 드러내고 말았다.
여호야김은 형제 여호아하스를 보고도 경계를 받지 않았으며,
여호야긴과 시드기야도 여호야김을 보고도 경계를 받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같은 죄를 그대로 범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산 것이다.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끝내 죄와 그 책임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죄의 결과를 보고도 같은 죄를 반복한다.
이 유다의 마지막 이야기는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들의 이야기이다.
우리가 그 현장에 있어서 그들과 달리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을 붙잡았을 것이라고 정말 자신하는가?
우리는 베드로의 결말을 이미 알고 있기에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는 베드로의 주장에 표를 던지지 않는다. 우리는 그의 연약함을 알고 있다. 지금은 자신하지만 결국은 주님을 3번이나 부인하게 될 연약한 존재임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실 베드로가 자신의 믿음을 주장할 때, 그 주장이 당시에는 담대했고 용기있고, 진실한 주장이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베드로는 시험에 처했을 때 무너지게 되는 그 자신의 본성의 연약함을 알지는 못했다. 그는 자신의 연약함을 진짜 몰랐던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약함을 대면해본 적이 없었다.
우리는 자신의 약점과 결점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실패는 믿음이 있다는 자신에 대한 환상을 깨부수어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에 대해 솔직해지게 한다. 실패는 거울을 들고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라고 권한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실 때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아무런 이유 없이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시지 않는다.
그들이 끝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버렸기에 하나님께서 마침내 그들을 버리신 것이며, 그들이 다른 신과 우상을 섬기는 것을 좋아했기에, 그들이 좋아하던 다른 신과 우상을 이방 땅에서 섬기게 하신 것이다. 그들이 죄를 끝까지 고집했기에, 하나님은 그들이 고집하는 죄 속에 그대로 두신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버렸을 때, 악과 고통이 그들에게 임하게 되었다.
(렘 2:19)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패역이 너를 책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2. 위정자로부터 시작하여 백성까지
나라의 위정자인 왕으로부터, 백성들까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했기에, 그들이 멸시당한 것이며, 하나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쫓겨나 이국 땅에 포로로 잡혀가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의 길을 자신과 관계없이 여기는 사람들에게 임할 멸망을 이미 오래전부터 말씀하셔 왔다.
(욥 34:18) 그는 왕에게라도 비루하다 하시며 귀인들에게라도 악하다 하시며
(욥 34:19) 왕족을 외모로 취치 아니하시며 부자를 가난한 자보다 더 생각하지 아니하시나니 이는 그들이 다 그의 손으로 지으신 바가 됨이니라
(욥 34:20) 그들은 밤중 순식간에 죽나니 백성은 떨며 없어지고 세력 있는 자도 사람의 손을 대지 않고 제함을 당하느니라
(욥 34:21) 하나님은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며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나니
(욥 34:22) 악을 행한 자는 숨을만한 흑암이나 어두운 그늘이 없느니라
(욥 34:23) 하나님은 사람을 심판하시기에 오래 생각하실 것이 없으시니
(욥 34:24) 세력 있는 자를 조사할 것 없이 꺾으시고 다른 사람을 세워 그를 대신하게 하시느니라
(욥 34:25) 이와 같이 그들의 행위를 아시고 그들을 밤 사이에 엎으신즉 멸망하나니
(욥 34:26) 그들을 악한 자로 여겨 사람의 목전에서 치심은
(욥 34:27) 그들이 그를 떠나고 그의 모든 길을 무관히 여김이라
하나님께서는 욥기에 기록하신 말씀대로 그들에게 행하셨다.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길을 버렸을 때, 하나님의 징벌이 그들에게 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아끼사 부지런히 깨우치시려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왕에서부터 일반 백성까지 그것을 거절하였고 결국 만회할 수 없게 되었다.
(대하 36:13) 느부갓네살 왕이 저로 그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케 하였으나 저가 배반하고 목을 곧게 하며 마음을 강퍅케 하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하였고
(대하 36:14) 제사장의 어른들과 백성도 크게 범죄하여 이방 모든 가증한 일을 본받아서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거룩하게 두신 그 전을 더럽게 하였으며
(대하 36:15)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백성과 그 거하시는 곳을 아끼사 부지런히 그 사자들을 그 백성에게 보내어 이르셨으나
(대하 36:16) 그 백성이 하나님의 사자를 비웃고 말씀을 멸시하며 그 선지자를 욕하여 여호와의 진노로 그 백성에게 미쳐서 만회할 수 없게 하였으므로
(대하 36:17) 하나님이 갈대아 왕의 손에 저희를 다 붙이시매 저가 와서 그 성전에서 칼로 청년을 죽이며 청년 남녀와 노인과 백발노옹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였으며
3. 유다 백성들의 만회할 수 없는 뿌리깊은 죄악상(멸망후 애굽에서)
나라가 망해서 애굽으로 내려간 유다인들의 죄를 보면 그들의 죄가 얼마나 깊게 사무쳐있는 지, 결코 만회할 수 없다는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알게 된다.
(렘 44:15) 때에 자기 아내들이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는 줄을 아는 모든 남자와 곁에 섰던 모든 여인 곧 애굽 땅 바드로스에 거하는 모든 백성의 큰 무리가 예레미야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렘 44:16) 네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하는 말을 우리가 듣지 아니하고
(렘 44:17) 우리 입에서 낸 모든 말을 정녕히 실행하여 우리의 본래 하던 것 곧 우리와 우리 선조와 우리 왕들과 우리 방백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하던 대로 하늘 여신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리리라 대저 그 때에는 우리가 식물이 풍부하며 복을 받고 재앙을 만나지 아니하였더니
(렘 44:18) 우리가 하늘 여신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 드리던 것을 폐한 후부터는 모든 것이 핍절하고 칼과 기근에 멸망을 당하였느니라 하며
(렘 44:19) 여인들은 가로되 우리가 하늘 여신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릴 때에 어찌 우리 남편의 허락이 없이 그에게 경배하는 과자를 만들어 놓고 전제를 드렸느냐
요시야의 유다 마지막 개혁들이 있었으나 그러한 개혁들은 각 가정의 남편과 아내, 백성들의 실상가지는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들의 이 뿌리 깊은 죄악상을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의 당위성을 보게 되며, 그들이 결국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섬길 자격을 박탈당하게 된 것이 당연한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렘 44:22) 여호와께서 너희 악행과 가증한 소위를 더 참으실 수 없으셨으므로 너희 땅이 오늘과 같이 황무하며 놀램과 저줏거리가 되어 거민이 없게 되었나니
4. 유다의 멸망은 자매 이스라엘의 멸망을 보고도 돌이키지 않은 것에 대한 심판이다.
유다의 죄가 이미 멸망한 북이스라엘의 죄보다 큰 것은 그들에게 여러 번의 개혁이 있었고, 북이스라엘이라는 거울 있었다는 데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얼굴을 보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렘 3:7) 그가 이 모든 일을 행한 후에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게로 돌아오리라 하였으나 오히려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고 그 패역한 자매 유다는 그것을 보았느니라
(렘 3:8) 내게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어쫓고 이혼서까지 주었으되 그 패역한 자매 유다가 두려워 아니하고 자기도 가서 행음함을 내가 보았노라
(렘 3:9) 그가 돌과 나무로 더불어 행음함을 가볍게 여기고 행음하여 이 땅을 더럽혔거늘
(렘 3:10) 이 모든 일이 있어도 그 패역한 자매 유다가 진심으로 내게 돌아오지 아니하고 거짓으로 할뿐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 3:1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배역한 이스라엘은 패역한 유다보다 오히려 의로움이 나타났나니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북이스라엘은 선한 왕도 개혁도 없었다. 그러나 유다는 있었다. 그럼에도 이러한 유다의 패역무도한 죄악이라니...
1명의 선한 왕도 배출하지 못한 북이스라엘이 오히려 유다보다 의롭다고 하시는 것은 절대적인 기준을 그들이 통과해서 의로운 것이 아니다. 그저 상대적인 것이다.
유다는 죄의 심각성을 알기 위해, 반드시 죄를 지어야 했을까?
유다는 죄에 대한 심판의 위험성을 경험해보기 위해, 반드시 죄를 지어야만 할까?
아니다.
유다는 이스라엘을 보고 경계를 받고 조심했어야 했다.
우리의 거울인 것이다. 경계요 교훈인 것이다.
(고전 10:6)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 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우리는 또한 어떠한가? 우리 자신들과 학생들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성경이 우리 손에 들려있는 이유는 그것을 막기 위해서다.
(고전 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5. 자칭 하나님의 백성이 망하여 약속의 땅을 빼앗기고, 포로로 끌려갔다.
유다가 망했을 때, 백성들은 이방의 땅으로 끌려갔으며, 약속의 땅을 빼앗겼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을 붙잡았다면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 속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잃어 버렸고,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결국 모든 것을 상실하고 멸망의 포로가 될 것을 우리는 교훈받아야 한다.
(수 23:16) 만일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을 범하고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에게 절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미치리니 너희에게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가 속히 망하리라
(왕상 9:6) 만일 너희나 너희 자손이 아주 돌이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숭배하면
(왕상 9:7) 내가 이스라엘을 나의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 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될 것이며
(왕상 9:8) 이 전이 높을지라도 무릇 그리로 지나가는 자가 놀라며 비웃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무슨 까닭으로 이 땅과 이 전에 이 같이 행하셨는고 하면
(왕상 9:9) 대답하기를 저희가 자기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자기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부종하여 그를 숭배하여 섬기므로 여호와께서 이 모든 재앙을 저희에게 내리심이라 하리라 하셨더라
가나안 땅은 하나님 나라의 상징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김으로 가나안 땅에서 추방당한 유다의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자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임을 교훈하여 준다.
이 시대의 사람은 세상에서 자기만의 우상을 섬길 것이고(그것이 재물이든, 건강이든, 명예든, 자식이든, 쾌락이든), 결국 그것만을 추구함으로써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상실하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아래 있게 될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계 22:15)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밖에 있으리라
6. 사람이 말씀을 버리고 죄를 고집하면 시세를 오판한다.
대하 36장은 17대 여호아하스부터 20대 시드기야까지 그들의 모습을 한 장에 모두 기술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기이한 점은 그들이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은 고사하고, 어쩌면 이렇게 정치적인 판단마저도 없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그들의 국제적인 정치적인 판단이 너무나 미숙하고 어리석다는 것이다.
국제 정세를 보았을 때 여호야김은 뻔히 보이는 정세를 오판한다.
여호야김이 어리석게도 애굽을 의지하고 바벨론을 배신하는 것이나, 시드기야의 바벨론 배신을 보면 그들의 어리석음을 보게 되는데, 도대체 그들은 왜 이렇게 시대의 흐름을 모르고 오판한 것일까?
(대하 36:16) 그 백성이 하나님의 사자를 비웃고 말씀을 멸시하며 그 선지자를 욕하여 여호와의 진노로 그 백성에게 미쳐서 만회할 수 없게 하였으므로
사람이 말씀을 멸시하고 말씀을 버렸기 때문이다.
말씀을 버리면 마땅히 볼 것을 보지 못한다.
말씀은 영혼을 밝히는 빛이요, 등불이다. 그러므로 말씀이 없으면 앞이 보이지 않는다.
(잠 6:23)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말씀이 없어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시세를 오판하는 것이다.
죄를 고집하면 말씀이 사라지는 것이요, 말씀이 사라지면 앞이 보이질 않는다.
그래서 넘어지는 것이다.
7.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붙잡아야 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말씀을 붙잡아야 한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기에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것이다.
온 세상이 다 흔들려도 흔들리지 않을 그 분의 말씀을 우리는 붙잡아야 한다.
그러면 온 세상이 모두 나와서 나를 흔들어대도 흔들리지 않게 될 것이다.
그들이 말씀을 멸시하고 자신의 생각을 고집했을 때, 심판과 멸망과 포로됨이 있었다.
이를 우리 자신과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다.
(렘 6:19)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법을 버렸음이니라
(렘 4:18) 네 길과 행사가 이 일들을 부르게 하였나니 이는 너의 악함이라 그 고통이 네 마음에까지 미치느니라
우리는 나의 길과 나의 행사를 정직히 직면하고 있을까?
나는 나의 생각과 그 결과를 예측하고 있을까?
그리하여 피하고 있을까? 아니 피하려는 생각이나 있을까?
혹시 그대로 머무르려고 하진 않는가?
정직히 자기 자신을 직면하고, 자신을 돌아볼 일이다.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시킬 때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 말씀대로 굳게 서 있어야 한다.
말씀위에 서면 선다. 말씀을 포기하면 포기한다.
그리고 결과는 죄의 포로이다. 비참이다. 수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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