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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부 성경공부

기쁜 소식을 전한 문둥병자

by 언약의 지팡이 2024.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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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둥병자

. 기쁜 소식을 전한 문둥병자 관찰

1. 내용 분해

왕하6:24-33 아람왕이 과거의 교훈을 잊고 또다시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사마리아 성을 포위했는데 이번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돕지 않으심으로 사마리아 성 사람들이 극심한 기아 상태에서 자신들의 아이를 삶아 먹기까지 하는 참상에 빠짐.

왕하7:1-2 사마리아 성 구원에 관한 엘리사의 예언과 그 예언에 대한 한 장관의 불신

왕하7:3-11 성 밖의 네 문둥이를 통하여 사마리아 성에 하나님이 이미 사마리아를 구원해 주셨다는 소식이 전파됨

왕하7:12-15 여호람 왕이 문둥이들이 전파한 구원 소식에 의혹을 가지고 정탐꾼들을 파견함

왕하7:16-20 엘리사의 예언대로 사마리아 성이 구원받고, 엘리사의 예언에 대해 조롱했던 한 장관이 죽임 당함.

 

2. 어려운 용어 해설

나귀 머리 하나에 은 팔십 세겔 : 나귀는 부정한 짐승이었기 때문에(11:4) 그 고기를 식용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을 매매할 정도였다면 이미 먹을 수 있는 것들이 바닥났음을 잘 보여주는데, 그 나귀의 머리까지 은 팔십 세겔에 팔렸다면 거의 아사직전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반증해 준다. 1세겔이 노동자의 4일치 임금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거의 나귀 머리의 값이 거의 일년치 임금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합분태 사분 일 갑에 은 다섯 세겔 : ‘합분태’(히르이요님)는 배설물이라는 뜻의 헤레에서 유래한 말로 비둘기 똥을 가리키거나 비둘기 똥과 같이 여물지 않은 콩을 의미한다. 또한 은 마른 물건을 측량하는 히브리인의 가장 작은 단위로서 정확한 단위를 알 수 없으나 미쉬나의 기록에는 1.2리터로 요세푸스에 의하면 1.9리터 정도에 해당한다고 한다. 따라서 합분태 사분의 일 갑이 다섯 세겔에 팔렸다는 것은 나귀의 머리가 은 팔십 세겔에 팔렸다는 말과 함께 극심한 식량난을 보여준다.

 

한 장관 곧 왕이 그 손에 의지하는 자: 고대 근동의 왕들에게는 왕의 군마를 포함한 전투에 참가하는 모든 군마를 관리하고 책임지는 이른바 군마대장이라는 관리가 있었다. 솔로몬 이 전차를 도입하였을 때 군마대장의 임무가 하나 더 증가되었다. 당시의 전차에는 세 사람이 탈 수 있었는데, 왕의 마차에는 말을 조종하는 병사와 왕, 그리고 왕의 방패와 무기를 들고 다니는 군마대장이 함께 탔다. 그런데, 말이 갑작스럽게 튀어 나가거나 너무 빠르게 출발할 때 왕이 자칫 뒤로 넘어지는 수도 있었다. 그래서 전차를 탈 때 항상 군마대장은 왕의 뒤에 똑바로 서서 가죽 손잡이를 잡고 있어야 한다. 이는 곧 왕이 뒤로 넘어지더라도 군마 대장의 팔에 기댐으로써 밖으로 떨어져 나가 다른 말에게 짓밟히게 되는 불상사를 막는 보호책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왕의 군마대장은 어떠한 위험으로부터 왕을 보호하며 그 생명을 지켜야 했던 중요한 인물이었다.

 

감추니라(왕하7:8) : 고대 전쟁시 승리한 군대는 패배한 군대와 그 군대가 속한 나라의 보물들을 전리품으로 마음대로 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경우에 전리품을 취한 군대나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모두 국가의 소유가 되었다. 문둥병자들이 아람 군대의 진에 있던 보물들을 감춘 것은 훗날 자신들의 개인의 소유로 삼기 위해 취한 행동이었다.

 

선치 못하도다(왕하7:9) : '옳지 않다', '합당치 않다'. 현재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 중에서 굶주리며 살아가고 있는데, 자신들은 마음껏 먹고 마신 것만으로도 너무나도 감사한 일인데 법을 어겨가면서 재물을 취하려고 하는 것이 잘못된 것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문둥병자

. 기쁜 소식을 전한 문둥병자 해석

1. 민족의 범죄에서 비롯된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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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람왕이 과거의 교훈을 잊고 또다시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사마리아성을 포위하였는데, 이전에 아람왕의 손에서 번번이 건져주신 것과는 반대로 이번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돕지 않으심으로 사마리아 성 사람들이 극심한 기아 상태에서 자신들의 아이를 삶아 먹기까지 하는 참상에 빠졌음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미 아합가의 심판을 선언하신 후에도 수차례 그들의 죄에 마땅한 중간 징계를 주시면서 마지막 심판에 대한 회개의 경고를 주시고 당신만이 구원의 능력과 사랑이 있는 분이심을 보이시면서 회개를 거듭 촉구하신 것이다. 그러나 북 이스라엘 백성들과 아합 가문은 일관되게 타락하여 마침내 징계를 받고 말았다. 여기서 우리는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이 그 얼마나 강하고 끈질긴 것인지를 깨닫는 동시에 끝끝내 회개치 않는 이스라엘을 심판하심은 세상 끝 날의 최종 심판에 대한 예표로서 보여 주신 것이다.

이스라엘왕은 비극적 참상을 보고 어떤 행동을 취했어야 옳은가?

그는 사마리아성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적 사태가 이스라엘에 만연한 죄악과 우상숭배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회개 운동을 전개했어야만 옳았다.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자기 자식을 잡아먹는 참극이 생기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으로 말미암는 저주의 결과였기 때문에(26:27-29;28:53-57) 왕이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죄악과 우상숭배를 일소하고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기다리는 바로 그것이었다.(30:1-10)

 

2.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

인간의 이성과 지식을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내용마저 우리는 믿음으로 순종해야 한다. 이스라엘 왕의 신임을 받던 장관은 엘리사를 통해 예언되는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나 비현실적이고 실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불신앙적 태도는 인간이 지닌 지식과 능력의 한계 속에 하나님을 묶어 두려는 어리석은 처사였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을 믿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주님의 재림을 황당무계한 이야기로 비웃는 자들이 많이 있다. 바로 이런 자들에게는 이스라엘 왕의 장관에게 선언된 심판처럼 영원한 사망이 예비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이 아무리 혹독하다 하더라도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구원을 바라보는 자들이다. 사마리아 성 안의 엄청난 비극과 절망적 상황을 전해 듣고도 엘리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3. 여호와의 구원을 가장 먼저 체험한 자들은 다름 아닌 네 문둥이들이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서 버림받아 성 밖에 거주하던 자들로서 가장 깊은 절망 가운데 있던 사람들이었다. 성 안에 거주하는 가족이나 친족들이 음식을 가져다주지 않으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그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서 사마리아 성을 포위하고 있던 아람 군대를 쫒아 내신 것을 제일 먼저 발견하였으며 그들의 진영에서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이 이 기쁜 소식을 기꺼이 사마리아 성안 사람들에게도 전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하여 사마리아 성에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이 전파될 때 나타나는 한 특징을 발견하게 된다. 즉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대로(61:2;4:17) 복음은 무엇보다 먼저 양육간의 절망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전파된다는 것이다.(7:22-23) 이는 하나님의 자비의 특성을 분명히 반영하는 것이다. 그리고 절망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뿌려진 복음의 씨앗은 다른 누구보다도 속히 싹을 내고 크게 자라나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처지에서 이미 깊은 절망을 맛보았기에 누구보다 하나님의 은혜에 크게 감동하며 선을 행함으로써 그 은혜에 보답코자 하는 것이다.

구원에로의 동기

사람은 자기의 삶이 곤경한 지경에 이르렀을 때, 새삼 하나님의 도움을 요구합니다. 즉 자기의 상태가 절망적이고 더 이상 자기로서 어떻게 손 쓸 수 있는 방법이 없을 때, 비로소 구원을 향한 동기는 발생한다고 하겠습니다. 이 말은 위기를 느끼지 않는 사람은 그만큼 하나님을 향한 구원에의 동기가 희박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은 절박한 곤경에 처했을 때 전능자를 찾고 구원을 갈망하게 됩니다. 문둥병자의 신세로 살아온 이들에게 있어서 사마리아 성의 기근에 누구보다도 큰 타격을 받았으며 가장 먼저 비참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정상적인 날들에는 이들 문둥이들의 양식이 성벽을 건너서 조달되어 왔었으나 성안의 식량이 떨어진 후에는 그들에게도 모자라는 식량을 이들이 얻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니 식량이 있었다 해도 포위되어 성밖에 나올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어차피 그들에게 식량 전달은 불가능했습니다.

구원을 위한 노력

자신의 구원 문제를 방치하여 두는 자는 자기 영혼을 스스로 살해하는 자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구원 문제를 심각히 고려하고 그 삶의 통로를 찾기 위해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성문 어귀에 있는 네 명의 문둥이들이 취한 행동에서 우리는 큰 교훈을 발견합니다. 네 명의 문둥이들은 가만히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지 않고 살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의논하고 적극적으로 움직였습니다.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 이것이 이들 문둥이들의 자세였습니다. 우리들은 이전에 모두가 멸망받을 신분을 가진 자들이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흘리신 보배의 피로 인하여 구원으로의 문은 활짝 열렸습니다. 이 열려 있는 구원의 문을 들어가기 위하여 우리는 움직여야만 합니다. 우리들이 죄를 짓고 하나님에 대한 의무를 잃어버렸을 때, 우리는 속히 용서함받기 위한 그 어떤 조치를 찾아보아야 합니다. 가만히 않아서 벌받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면 우리 모두는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멸망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구하는 일에 대하여 아무런 손도 쓰지 않고 방관한다는 것은 죄를 가만히 앉아서 짓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간과하여서는 안 됩니다. 찾을 때 만나게 하시고 구할 때 주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믿고있습니다.

구원을 위한 결단

'우리가 성에 들어가자고 할지라도 성중은 주리니 우리가 거기서 죽을 것이요 여기 앉아 있어도 죽을지라 그런즉 우리가 가서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자 저희가 우리를 살려 두면 살려니와 우리를 죽이면 죽을 따름이다'(4). 그들은 이 굶어 죽을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비장한 결단을 내립니다. 이것은 현재 이곳에서는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적진을 향하여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선택한 결정에는 잘해야 음식을 제공받을 수 있는 처지이고 여차하면 그들의 칼에 죽을 운명의 길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을 위한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였다면 이제 남은 것은 구원받은 자답게 생활 속에서 결단하여 가는 삶이 필요합니다. 근심과 불안, 신앙에 대한 불확실한 태도는 구원받기에 부족한 자세입니다. 성문 어귀의 네 문둥이들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중대한 기로의 선상에서 살아나기 위해 취한 유일의 방도를 결정하고 난 후에 그 결정대로 행동했습니다.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비장한 결단력으로 그들은 적진을 향하여 간 것입니다. 믿음의 생활이란 매일매일의 결단이 요구되는 생활입니다. 쟁기를 잡고 뒤돌아보는 자는 하늘나라에 적합한 자가 될 수 없습니다. 자기의 구원에 대하여 확신하지 못하고 흔들리는 중심으로 신앙을 영위하여 나가는 자가 있다면 그는 결단으로의 삶을 살지 못하는 자라고 하겠습니다. 네 문둥이가 근심 속에서 결단하지 못하고 그대로 있었다면 그들은 필경 굶어서 죽고야 말았을 것이며, 자기 동족인 사마리아 백성을 살리지도 못하였을 것입니다.

증언해야 할 내용

기쁨이 가득합니다.

극도의 궁핍함으로 나라 전체가 의기 소침하고, 군대는 사기가 저하되었을 때, 아람 군대가 하나님께서 취하신 일들로 혼비 백산해 도망을 가면서 막대한 금은 보화와 식량, 그리고 무기들은 그대로 남겨 놓았다는 소식은 엄청난 기쁨을 이스라엘에게 가져다 주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죄악과 죽음의 고통으로 신음하는 인류를 위해 주님께서 가져오신 복음은 우리 모두를 넘치는 큰 기쁨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축복이 넘칩니다.

굶어 죽게 된 네 문둥이가 하나님의 인도하심대로 따라가 보았더니 거기에는 굉장한 음식과 보물들이 있었습니다. 이것들은 네 문둥이와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취하고도 남을 만큼의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죄의 형벌로 인하여 저주 상태에 놓여 있는 인류에게 영생과 천국의 축복을 주시기 위해 오셨던 것입니다. 이 축복은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넉넉한 축복인 것입니다.

해방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아람 군대에 의해 포위를 당한 이스라엘은 네 문둥이가 전해 준 아람군대의 퇴각 소식에 해방의 감격을 맛보게 됩니다. 복음은 죄로 인해 마귀의 종노릇하던 우리를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주님께서도 진리를 통하여 우리가 자유케 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참조, 8:32). 그리고 그는 우리를 모든 저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문둥병자

. 기쁜 소식을 전한 문둥병자 적용

1. 우리는 어떠한 역경에 처하더라도 하나님이 능히 우리를 지켜 주실 것을 믿고 또한 그 고난을 통해서 심지어 죽음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더 큰 축복을 주실 것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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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37:4-7)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2. 우리가 먼저 믿음과 복음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축복을 누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2:2-3)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7: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21:3-4)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3.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의 복음의 증인으로 부르고 계십니다. 그 부르심에 거역하는 자가 되지 말고 온전히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딤후 4:1-2)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24:11-12)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주며 살륙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치 말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저울질 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증하시리라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갈멜산의 대결

(왕상18:17-19) 엘리야를 볼 때에 저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네냐 저가 대답하되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비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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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를 돌보신 하나님

[왕상17:1-4]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고하되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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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자를 다시 일으키시는 주님

구원받은 이후 이 세상을 살다보면, 누구나 인생의 시련과 실패와 패배의 쓴 맛을 볼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실패를 통하여 성도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주님을 더욱 더 알게 해주십니다. 다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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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를 따른 엘리사

(왕상19:19-21)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저가 열 두 겨리 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둘째 겨리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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