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18:17-19) 엘리야를 볼 때에 저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네냐 저가 대답하되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비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좇았음이라 (19) 그런즉 보내어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 오십인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인을 갈멜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오게 하소서
(왕상18:36-40) 저녁 소제 드릴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38)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39)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40) 엘리야가 저희에게 이르되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하매 곧 잡은지라 엘리야가 저희를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이니라
1. 당시 사건의 배경
엘리야가 활동했던 나라는 어디인가? 바로 북 이스라엘이었다. 북 이스라엘은 남 유다와는 달리 여로보암 이래 송아지 우상 숭배를 시작으로 호세아 왕 때에 나라가 망할 때까지 끝까지 여호와를 떠나 타락한 나라이다. 그럼 당시의 통치자는 누구인가? 수 많은 이스라엘의 악한 왕 중에서도 가장 악했던 왕인 아합의 통치 시기였다. 아합의 아버지 오므리는 정치적으로는 뛰어난 면을 발휘해서 당시의 이스라엘과 수도 사마리아를 솔로몬 시대에 버금갈만큼 번영시켜 놓았다. 그러나 종교적으로는 극도로 타락하여 계속적으로 우상 숭배를 했는데 그의 가장 큰 잘못 중 하나는 바로 자기 아들 아합을 시돈 왕 엣바알의 딸인 이세벨과 이방결혼을 시킨 일이다. 시돈왕과의 정치적인 목적으로 정략결혼을 시킨 것인데 이는 두고두고 이스라엘의 화근이 된다. 그의 딸 이름이 무엇인가? 바로 유다의 여왕 아달랴이다. 그는 아합의 딸로 유다 왕 여호람과 결혼하여 유다를 이스라엘처럼 우상숭배하게 만든 여인이다. 게다가 자기 아들 아하시아 왕이 죽자 자기 아들의 씨를 다 찾아내 죽이고 자기가 여왕이 되어 6년간 통치한 극악무도한 여자였다. 어떻게 할머니가 자기 손자들을 다 죽일 수 있는가? 이 모든 것을 누구에게 배웠겠는가? 아버지 아합, 그러나 더 근원을 따지면 어머니 이세벨! 아합과 이세벨의 이방 결혼이 북이스라엘 뿐 아니라 남유다에도 얼마나 죄를 만들어냈는가?
이렇듯 가장 악한 아합왕과 가장 악한 왕비 이세벨이 통치하던 시기였으니 당시 상황이 어떠했겠는가? 그들은 여호와를 완전히 버리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다. 바알 신은 원래 생산을 주관하는 신으로 가나안 거민들이 섬기던 신이었으며 민수기 22장 41절 발람과 발락의 이야기에 처음 나온다. 이후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고 사사 시대에 바알을 섬겼으며, 사무엘의 책망으로 바알 숭배를 회개했는데 다시 아합 시대에 이세벨이 바알과 바알의 아내인 아세라(아스다롯)를 섬기게 된 것이다.
엘리야가 이스라엘의 이런 우상 숭배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3년 반 동안 비가 오지 않게 했다. 그러자 아합과 이세벨은 자기들의 죄를 뉘우쳤는가? 아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방법으로 물을 찾으러 다녔다. 더 나아가 이렇게 비가 오지 않는 것이 바알이 아닌 여호와를 섬기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여호와를 섬기는 사람들을 모두 죽였고(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우상숭배이다) 엘리야도 죽이러 찾아 다녔다.
(왕상19:14)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이런 상황에서 엘리야 혼자서 아합 왕에게 나아갔다. 그의 앞에는 당장에라도 그를 죽이려 하는 아합 왕과 바알 선지자 450, 아세라 선지자 400인, 그리고 온 이스라엘이 있었다. 엘리야는 이들을 상대로 혼자서 대결을 벌이는 것이다. 이것은 현재 우리의 입장과는 완전히 다르다. 지금은 온 세계가 여호와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다 아는 시기이다. 우리나라에도 기독교 인구가 1000만이 넘고,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특별히 부인하거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러 다니지는 않는 시기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두 바알을 참 신으로 생각하는 시기였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는 다 잊어버린 시기였다. 여호와를 믿는 사람은 극소수이고 바알을 믿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여호와를 믿는 것이 이단이고, 죽음에 해당할 만큼 큰 죄이고 사회적 지탄을 받는 시기였다.
2. 엘리야의 통쾌한 승리
이런 시기에 자기의 신앙을 지킬 수 있을까? 우리 중에는 지금과 같이 좋은 시기에도 자기 신앙 하나 지키지 못해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엘리야는 자기 신앙 하나 유지하는 것도 힘든 그 어려운 시기에 당당하게 외쳤다.“나는 여호와의 선지자이다. 하나님의 종이다.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비가 오지 않을 것이다” “누가 참 신인지 한번 가려보자. 너희 바알 선지자 다 나와라! 아세라 선지자도 다 나와라. 나 혼자하고 한번 해 보자.”
우리도 교사로서 당당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나는 교사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라고 당당하게 하나님을 선언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자. 엘리야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다.
그는 당당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참 용기를 가졌다. 그리고 통쾌하게 승리했다. 그리고 바알 선지자들을 다 죽이고, 이스라엘로 하나님만이 참 신임을 알게 했다. 하나님만이 엘리야의 이런 용기는 선천적으로 부여받은 것이 아니다. 그는 이세벨이라는 한 여자가 자기를 죽이겠다고 위협하자 광야까지 도망가서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 스스로 죽기를 구할 만큼 유약한 면이 있는 사람이다. 야고보서 5장에 보면 “그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다”라고 되어있다.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인 엘리야, 자기 생명을 위해 도망한 엘리야가 이 때는 어떻게 이렇게 당당할 수 있었는가? 이것은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이다. 성령 충만의 결과이다. 그럼 그가 이렇게 성령에 붙들릴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이렇게 담대하게 나아가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3. 엘리야의 승리의 비결
그것이 바로 믿음의 차이이다. 엘리야는 우리보다 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의지했던 사람이다. 그럼 어떻게 그는 하나님을 우리보다 더 많이 알고 의지할 수 있었을까?
첫째는 그는 우리보다 더 많은 개인적인 기도로 하나님을 더 많이 만났고, 더 많이 알았고, 그래서 더 많이 믿을 수 있었다. 이다. 엘리야는 기도의 사람이었다. 그는 기도함으로 비가 오지 않게 했고, 기도함으로 죽은 아이를 살렸으며, 기도함으로 자기를 대적하는 사람들이 둘러 싼 가운데 목숨을 걸고 벌인 갈멜산의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또 기도함으로 삼년 반 만에 다시 땅에 비가 오게 만들었다. 그는 기도로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알았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이 엘리야의 하나님이 된 것이다.
둘째로 그는 훈련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갈멜산에 서기까지 생활 중의 작은 일에서부터 큰일까지 하나님을 의뢰하는 훈련으로 연단되었고, 결국 갈멜산에 설 수 있을 정도의 믿음을 갖게 된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훈련받는 엘리야의 모습을 17장에서 볼 수 있다.
그는 기근이 시작되었을 때 그릿 시냇가에서 숨어 지내며 한 끼 식사마저도 하나님께 구해야만 하는 훈련을 받았다. 하나님은 그릿 시냇가의 엘리야에게 며칠 정도는 안심해도 될 만큼 많은 식량을 주시지 않았다. 매일 엘리야가 먹을 수 있었던 것은 까마귀가 물어다 주는 떡과 고기, 그리고 말라가는 시냇물이었다. 어쩌면 엘리야는“혹시 까마귀가 안 오면 어떻게 하나? 굶어야하나? 다른 음식을 찾아야 하나? 냇물이 다 말라가는데 어떻게 하지? 샘을 파 보아야 하나?” 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어려움 가운데서도 그는 온전히 하나님만을 의뢰했고 그럼으로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고 알아갈 수 있었다. 냇물이 다 마르니 하나님은 엘리야를 어디로 인도하셨는가? 이방 지역인 시돈의 사르밧이었다. 그곳에 있는 부잣집으로 인도하셨는가? 아니다. 오히려 가루 한 움큼, 기름 조금 있는데 그것 먹고 아들과 함께 죽으려고 생각하는 극히 어려운 사정에 있는 과부에게로 인도하셨다. 그리고 가뭄이 끝날 때까지 엘리야가 그곳에 머물게 하신 것이다. 거기서도 하나님은 엘리야와 과부에게 가뭄이 끝날 때까지 먹을 수 있는 충분한 음식을 한꺼번에 주시지 않았다. 매일 가루 한 움큼, 기름 조금........ 그것은 조금이었지만 그러나 엘리야와 과부, 그 아들이 기근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기에는 충분한 양이었다. 이렇게 하심으로 기근 때 엘리야는 매일매일 하나님께 의지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또한 하나님은 과부의 아들이 죽었을 때 엘리야를 통해 살리심으로 엘리야를 훈련시키셨다. 이런 훈련들을 통해 엘리야는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는 그것을 개인적으로 적용하고, 100% 믿었다. 이렇게 준비된 사람을 하나님은 들어 쓰신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엘리야처럼 모든 일, 심지어 아주 작고 사소한 일까지도 하나님께 순종할 때에 하나님은 큰 일을 우리에게 맡기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맡은 작은 일 하나에도 최선을 다하는 자세, 그리고 작은 일에 연단과 훈련을 받을 때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4. 엘리야의 남은 사역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엘리야,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훈련을 달게 받음으로 위대한 믿음의 승리를 거둔 엘리야! 그러나 엘리야의 사역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엘리야는 자신의 일이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 완성되지 않음에 대해 낙담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특심한 열심이 열매를 거두지 못하는 것을 보고, 악인이 득세하는 것을 보고 낙담해서 다 포기하고 죽으려는 생각까지 했다.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항상 내가 생각하는 최선보다 더 나은 최선을 준비하고 계신다. 엘리야는 후에 그것을 알게 된다. 바로 변화산에서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예수님을 만났을 때이다.
(눅9:30-31)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31)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할쌔
그는 예수님을 만나고 그의 죽으심과 부활, 승천에 대해 교제함으로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을 알게 되었다. 즉 모세의 율법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 율법을 떠나 범죄한 자의 심판이 언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 즉 자신의 역할이 구속사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을 안 엘리야는 비로소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찬양에도 “나 지금 말고 그날에 더 좋은 그 나라에서 이 눈물의 뜻을 알고 또 그 말씀 이해하리.........”라고 되어 있지 않은가? 이제 7년 환난 때 엘리야는 다시 한번 이 땅에 와서 회개를 외치게 될 것이다.
(말4:5-6)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계11:3-6)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4)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 나무와 두 촛대니 (5)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찌니 누구든지 해하려하면 반드시 이와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6)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하여 피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5. 엘리야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엘리야의 하나님은 지금 살아계신다. 엘리야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들의 하나님은 오늘날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 나의 이름도 그 믿음의 족보에 들어갈 것이다. 어떤 모습으로 들어가야 하겠는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엘리야의 사역을 맡기시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게 맡겨진 일을 성실하고 진실하게 수행한다면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주셨던 영광과 상급을 나에게도 주실 것이다. 우리는 엘리야처럼 죽지 않고 하나님을 만나는, 영광스러운 승천을 할 수 있는 시대에 사는 그리스도인임을 잊지 말자. 그리고 주님 오시는 날까지 끝까지 충성되게 내게 맡겨 주신 일을 이루어가자!
사사들의 승리
우상숭배와 잡혼 (삿 2:16~17) 여호와께서 사사를 세우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내게 하셨으나 그들이 그 사사도 청종치 아니하고 돌이켜 다른 신들을 음란하듯 좇아 그들에게 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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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용사가 된 기드온
[본문 내용] *사사기의 순환 : 범죄(타락) → 책망과 징계(고통) → 회개(기도) → 구원(용서) → 순종(형통) *하나님은 우리의 죄에 대해서 반드시 징계하시고 또한 다시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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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받은 자의 삶에서의 고난의 의미 1. 삶의 고난의 종류 ① 신체적 고난 : 기형 출생, 사고, 병상의 고통, 재앙이나 불행, ... ② 정신적 고통 : 이별, 죄책감, 근심, 걱정, 염려, 불안, 초조,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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