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받은 이후 이 세상을 살다보면, 누구나 인생의 시련과 실패와 패배의 쓴 맛을 볼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실패를 통하여 성도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주님을 더욱 더 알게 해주십니다.
다윗은 자신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 앞에서 해결하려는 자세를 가졌습니다.
바로 이와같은 자세를 가진 사람에게는 고난도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시련이 시련이 아니라, 오히려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시 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하나님은 실패한 자를 다시 회복시켜 주십니다.
시편 60편의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할 때만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승리를 안겨다 주실거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실패를 통하여 성도는 올바른 믿음의 길을 가게 됩니다.
우리에게 오는 일시적인 실패는 주님을 더욱 의지하게 되고,
주님의 좋은 군사로 쓰임받기에 합당한 지체로 세워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 여호수아의 실패와 회복
여호수아 7장에,
이스라엘은 아이 성을 정탐하고, 숫자가 적으니 삼천 명쯤 올라갔다가 전쟁에서 패배하게 됩니다.
(수 7:2-5) (2) 여호수아가 여리고에서 사람을 벧엘 동편 벧아웬 곁에 있는 아이로 보내며 그들에게 일러 가로되 올라가서 그 땅을 정탐하라 하매 그 사람들이 올라가서 아이를 정탐하고 (3) 여호수아에게로 돌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백성을 다 올라가게 말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마소서 하므로 (4) 백성중 삼천 명쯤 그리로 올라갔다가 아이 사람 앞에서 도망하니 (5) 아이 사람이 그들의 삼십육 인쯤 죽이고 성문 앞에서부터 스바림까지 쫓아와서 내려가는 비탈에서 쳤으므로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 같이 된지라
아이 성의 패배로 인하여 절망 속에 빠져 있는 여호수아. 우리들도 때론 절망에 빠질수 있습니다.
그런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일어나라고 두 번이나 말씀하십니다.
(수 7:10)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수 7:13) 너는 일어나서 백성을 성결케 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여 내일을 기다리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아 너의 중에 바친 물건이 있나니 네가 그 바친 물건을 너의 중에서 제하기 전에는 너의 대적을 당치 못하리라
이제는 백성들 가운데 있는 죄를 해결하고, 새롭게 시작하라고 말씀하셨다.
여호수아는 절망 가운데서 일어났고, 아간을 찾아내서 죄를 해결하고, 전쟁을 하여 승리하였다.
우리도 실패했다면 패배의 자리에서, 절망의 자리에서, 슬픔의 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만약에 신앙의 잠을 자고 있다면, 일어나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엡 5: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
발레리나 강수진은 30년간 발레하면서 수천번, 수만번 넘어졌다. 강수진의 발은 상처 투성이였다.
강수진은 "무대에서 넘어졌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다시 일어나는 것이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서 넘어지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나 역시 수많은 작품을 준비하면서 넘어지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무대 위에서 화려하게 날아 올랐다가, 곤두박질 쳐서 망신을 당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인생에서 넘어지는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일어서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넘어진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아프다고 주저앉으면 그 무대는.., 그 인생은 거기서 끝나게 됩니다.
수 없이 일어섰기에 사람들이 '강수진'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듯이,
당신도 세상이 모두 아는 당신만의 이름을 가질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아간의 문제를 해결했을 때, 첫 번째 패배를 결코 헛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돌아보면, 우리의 과거조차도 후에 축복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초월 역사입니다.
2. 베드로의 실패와 회복
베드로는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 따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자기의 상태를 정확히 안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다른 사람들은 다 주님을 버릴지라도, 자신은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베드로는 자신을 잘 알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베드로는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셨습니다.
누가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을까요? 주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시다.
누가 자기를 정확히 알 수 있을까요? 주님을 가장 가까이 따르던 베드로조차도 자기를 잘 몰랐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판단에 자만심을 가져서는 안된다.
(마 26:33)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베드로 사도는 세 번 주님을 부인한 후에, 요한복음 21장에서 회복되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주님의 명령대로 형제들을 굳게 하는데 일생을 바쳤고,
신앙을 굳게 하기 위해 베드로 전후서를 기록했습니다.
베드로 전후서는 베드로가 형제들을 굳게 하기 위하여 쓴 글이다.
(벧후 1: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소명)과 택하심(사명)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베드로는 평생 살아가면서 닭이 울 때마다 자기의 죄를 떠올리고,
주님의 용서를 다시 상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 베드로가 교만해질 수 없었던 것은, 닭이 매일 우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평생에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고,
동시에 주님의 은혜를 상기하게 하는 것이 항상 가까이 있다면, 그것은 좋은 역할을 할 것이다.
닭은 베드로를 부지런하게 만들었을 것이며, 더욱 열정을 품고 주님을 섬기게 만들었을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도 우리에게 활력을 주는 것이 주변에 있으면 좋을 것이다.
찰스 스펄전은 서재에 주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의 책을 가까이 둠으로 자기 반성의 기회로 삼았다.
우리도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으면 좋을 것이다.
우리로 죄와 은혜를 깨닫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주일설교, 전도집회, 좋은 간증, 선교 소식, 세상의 흉흉한 소식들과 주님의 재림의 징조들)
우리의 양심을 일깨우는 것이 일종의 닭 역할을 하는 것이다.
3. 사도 바울의 실패와 회복
바리새파의 바울은 율법을 구원의 방편으로 여겼다.
따라서 그는 율법 실천에 몰두하였다(갈1:13-14, 빌3:5-6).
(빌 3:5-6) (5) 내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그래서 바울은 율법을 호되게 비판한 예수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율법과 성전 체제에 도전하다가 처형된 예수는 절대로 메시아일수 없다고 바울은 확신했습니다.
더구나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가 부활했다는 그리스도인들의 주장은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부활은 역사의 종말에 있을 미래 사건이지,
역사 한 가운데서 일어난 과거 사건일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바울은 교회를 박해하는 데 앞장섰다(갈1:13,23, 고전15:9, 빌3:6).
그가 박해한 그리스도인들은 율법과 성전에 대해 비판적인 헬라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이었다(행6:11~14). 사도행전에 따르면 그는 스데반이 예루살렘에서 순교할 때 가담했고(행7:58~8:1),
수리아 지방의 다메섹 교회를 박해하러 출장가기도 했다(행9:1~19, 22:3~21, 26:9~18).
스데반이 순교하자, 예루살렘의 헬라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은 지중해 동부 여러 곳으로 피신하여
처음에는 유대인들에게만, 나중에는 이방인들에게도 전도했다(행11:19~20).
바울이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려고 가는 도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
갑자기 비취는 강한 빛으로 인해 바울은 눈을 뜨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엎드리고 말았다.
바울이 '주여 뉘시오니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고 답하였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주님의 음성은 바울의 기세를 압도하여,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을 꺾으셨던 것입니다.
바울은 눈을 뜨지 못했다. 육신의 눈을 멀게 하였다. 즉시 3일간 금식하였다(행 9:1-9).
3일간의 회개는 물고기 뱃속에서 3일동안 회개하였던 요나와 같습니다.
복음의 대적자였고, 핍박자였던 바울은 이제 복음의 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회복시키시는 주님이시다.
바울은 복음을 증거하면서 병자를 치유하고 귀신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쫒아내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행했다. 그러나 본인도 육체의 가시, 즉 고질적인 질병을 앓고 있었다.
바울에게 있었던 육체의 가시가 무엇이었는지는 분명하게 언급이 없습니다.
안질이라고 추측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분명한 것은 바울의 육신에 고통을 주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로 인해 전도하는 데도 방해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께 질병을 떠나게 해 달라고 세 번이나 간구하였다(고후12:7-10).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
응답하셨다. 인간적인 생각에서는 건강해야 복음을 더욱 효과적으로 증거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지만, 하나님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은 달랐다.
바울도 사람이기에 언제나 교만에 빠질 수 있었다.
하나님은 바울이 교만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바울에게 질병의 고통을 허락하셨던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는 오히려 기뻐하고 하나님께 감사했다.
나에게 육체의 가시는? 나에게도 삶의 가시들이 있습니다.
삶의 가시를 통해서 겸손을 배우게 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타락한 인간이 고난마저 없다면, 얼마나 교만 했겠는가?"
삶의 가시를 통해서 기도의 제목이 됩니다.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안을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갖게 됩니다.
주님안에서의 삶의 가시들은 결코 문제가 아닌 은혜입니다. 그리고 결코 신앙의 방해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머무르게 됩니다.
4. 마가 요한의 실패와 회복
마가 요한은 사도 바울과 함께 첫 번째 선교여행에서 실패하고 돌아갔다(행13:13-14).
마가는 지중해 구브로 섬 출신으로 예루살렘에서 성장한 레위 족속이다.
마가는 바나바의 생질이다.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와 바나바는 오누이 관계인 것이다.
마가는 로마식 이름이고, 요한은 유대식 이름이다.
바나바와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왔다.
선교의 일꾼으로 삼기 위함이었다. 마가는 제1차 선교여행때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동행하였다.
그러나 도중에 어려움으로 인해 밤빌리아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버렸다.
마가의 이러한 행동은 후에 바울과 바나바가 갈라지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마가는 자기에게 기대와 소망을 가졌던 동역자들에게 실망을 안겨 주었다.
전도 여행에 수모를 겪었던 마가는 다시 신앙이 회복되어
10여년 후에 로마에서 바울과 함께 동역하였다. 마가 요한은 사도 바울에게 많은 유익을 끼쳤다.
(딤후 4: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바울이 죽은 후에는 베드로의 동역자로서 전도에 힘썼고,
베드로에게 아들이라는 호칭으로 불려질 정도로 베드로에게 유익한 동역자가 되었다.
(벧전 5:13)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마가는 비록 처음에는 실패했지만, 다시 일어나 선교 사역을 끝까지 잘 감당했던 것입니다.
주님은 실패한 마가를 버리지 않으시고, 이방의 전도자로 삼으셨다.
실패한 자를 다시 일으켜 주시는 주님이시다.
신앙생활에 아주 치명적인 실패는 오히려 더 충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결국 마가 요한은 마가복음을 기록하게 됩니다.
돌아보면 주님께서는 신앙생활하는 동안에
우리의 치명적인(말 못하는 과거) 과거조차도, 나중에 은혜가 되게 하시는 겁니다.
우리가 돌이키기만 하면,
하나님은 언제든지, 어떤 과거든지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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