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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부 성경공부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꾸시는 하나님

by 언약의 지팡이 2020.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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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꾸시는 하나님

 

 

1. 하나님의 축복을 약속받은 야곱

 

  장자 에서가 당연히 규례를 따라 장자의 축복을 받아야 하지만 오직 하나님의 주권으로 차자인 야곱에게 주시기로 뜻을 정하셨다. 또한 그 사실을 이삭에게 알려주셨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떠한 과정에서도 반드시 이루어진다.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간순간 변화되는 주변상황에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려야 한다.

 

  다윗에게 사울을 대신하여 왕이 되도록 머리에 기름이 부어졌으나 그가 왕이 되기까지는 10여년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울이 바로 폐위되지 않고 오히려 다윗은 사울에 의해 계속 쫒기는 신세가 되었다. 그 가운데 다윗은 많은 고난을 통과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으로부터 내 마음에 합한 자라는 칭찬을 받게 된다.

 

  다윗의 예와 같이 하나님은 축복 받을만한 그릇을 만드시고 마침내 복을 허락하신다. 결과만 기대하고 하나님이 일하시기 전에 자기의 사사로운 지혜로 자기가 먼저 나서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뜻이 세워지는 것이 중요하고 하나님의 약속은 더딜지라도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창25: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롬9:10-13) (10) 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롬9:21-23)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22)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 하리요

(행13:22-23) (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23)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합2: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찌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2. 자기 수단 방법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는 야곱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기 보다는 자신의 계획과 수단과 노력으로 무엇인가를 빨리 이루어내려고 한다. 배고픈 에서로부터 장자의 명분을 빼앗아내고, 아버지까지 속여 에서가 받을 장자의 축복을 가로채게 된다. 그로 인하여 에서의 노여움을 사서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에서를 피해 집을 떠나 낯선 땅으로 도망을 하게 된다. 벧엘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음에도 야곱은 자기의 받을 품삯을 여러 번 속인 삼촌 라반에게서 자기의 약은꾀로 재산을 늘리려고 한다, 그리고 드디어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야곱이 자기를 죽이려고 기다리고 있을 에서의 마음을 사기 위해 기도하기 보다는 자기의 경험과 방법을 총동원해본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말씀으로 그가 마음에 위안을 삼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믿고 살았다면 다른 인생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잠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19: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

(잠26:12)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

(시37: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야곱’이라는 말뜻은 ‘얍삽하다’. ‘교활하다’. ‘간사하다’는 뜻이다. 이러한 야곱의 원상태는 우리가 구원받기 전의 멸망 받아 마땅한 죄인의 상태와 유사하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 아니하고 자기 노력으로 하나님께 도달하고자하는 우리의 모습이다. 야곱은 차자로서 장자의 축복을 받지 못할 운명이었다. 우리는 죄인으로서 주님의 축복 곧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축복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있었다.

 

3. 야곱을 연단하시고 고난 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나님.

  축복을 받은 야곱에게 당장 주어진 것은 광야의 길이었고 고생의 길이었다.(창28:10) 하나님의 구원의 축복을 받은 막 출애굽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것은 광야였다.(신8:2) 구원받은 우리에게도 탄탄대로의 인생길이 아닌 주어지는 것은 험난한 고난의 길이다.(행14:22)

  그러나 고난의 길에서 하나님은 언제나 함께 하셔서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우리를 보호하시고 도와주시며 쉴만한 물가와 푸른 초장으로 인도해주신다.(시23편)

에서를 피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떠나는 야곱에게 하나님은 보호와 함께 하심을 약속해주셨다.

 

(창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사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행23:11)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롬15:33)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고후13:11)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빌4: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야곱은 이 사닥다리 꼭대기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또한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재 확약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처음으로 듣게 된다. 모든 약속들 중에 가장 값진 약속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약속이다. 순전히 은혜로 이런 약속을 야곱에게 주셨다.

  야곱에게 있어서 라반의 집이 훈련장이었다. 라반은 야곱보다 단수가 높았다. 야곱도 잔꾀가 많았지만 라반은 더 단수가 높았다. 라반의 집에서 20년간 봉사하는데 두 딸을 위해서 14년 + 외삼촌의 양떼를 위하여 6년(창31:41). 야곱은 ‘내가 왜 여기에서 고생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은 야곱의 육신의 껍질을 벗는데 꼭 필요한 것이었다.

(창31:42)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의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공수로 돌려 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나의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감찰하시고 어제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시31:19-22) [19]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인생 앞에서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20] 주께서 저희를 주의 은밀한 곳에 숨기사 사람의 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비밀히 장막에 감추사 구설의 다툼에서 면하게 하시리이다 [21]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견고한 성에서 그 기이한 인자를 내게 보이셨음이로다 [22] 내가 경겁한 중에 말하기를 주의 목전에서 끊어졌다 하였사오나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셨나이다

 

  이제 인생이 끝났다 생각할 때 거기서 하나님은 자신을 나타내신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윗을 인도하신 것처럼 지금도 마찬가지로 인도하신다. 모세가 왕궁에서 하나님을 체험한 것이 아니라 미디안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였다. 바울이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를 쓸 때 감옥 안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감옥에서 임하였다. 야곱에게 말씀이 임한 곳이 어디인가? 쓸쓸한 브엘세바 광야에서이다.

 

(시 23:6)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우리마음에 절대 양보하면 안 되는 진리가 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기 때문에 선을 행하신다는 것을 절대 양보하지 말라는 것이다. 현상을 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 된다. 그리고 믿음 가운데 기다리면 그 약속의 성취를 생의 여정 속에서 꼭 보게 될 것이다.

 

4. 야곱을 이스라엘로 변화시키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야곱을 이스라엘로 변화시키셨다. 여기에서 우리는 성령이 하시는 역사를 볼 수 있다. 혼돈하고 공허한 지구에 성령이 역사하셔서 아름다운 지구로 만드신 것처럼, 야곱의 인생도 아름답게 만드신 것이다.

 

  1) 인간의 최악의 한계가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는 곳이 된다.

  인간의 최악의 한계가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는 곳이 된다. 우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자기의 수단 방법이 끝나는 곳이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는 곳이 된다.

 

(창32: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막5:25-28)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

 

  야곱은 20년 전 하란을 향하여 갈 때와 같이 또다시 홀로 남게 되었다(창 28:10). 비록 20년 전에는 지팡이에 홀몸이던 자신이 처자와 두 떼를 이루는 거부가 되었다 할지라도, 얍복강변의 야곱은 여전히 외롭고 고독한 영혼이었다. 외롭고 고독한 그의 영혼은 20년 한 맺힌 에서의 칼날을 생각하며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야곱은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보았지만 에서에 대한 두려움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하는 야곱의 모습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기도로써 매달리는 야곱의 모습이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수단 방법이 완전히 끝났을 때, 곧 사라의 경수가 끊어지고 자신에게는 애기를 낳을 힘이 없어졌을 때 그 때가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는 때였다. 인간의 소망이 끊어진 자리가 하나님이 오셔서 일할 수 있는 자리가 되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약속의 말씀을 붙잡는 것이 현명한 길이 된다.

 

   2) 하나님께서 환도뼈를 치심.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났고 밤새 그와의 씨름 끝에 환도뼈를 위골시켰다. 환도뼈는 허리뼈 또는 엉덩이뼈로 해석이 되는데 우리 몸의 힘의 근원이라 할 수 있다. 야곱은 이제 더 이상 힘을 쓸 수가 없다. 한 없이 연약해지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가 된 것이다. 환도뼈는 강한 자기 생각, 자기를 과신하는 마음이라 할 수 있다. 그 힘의 근원은 좌절되고, 깨어지고, 시들어야만 한다. 우리의 힘은 하나님의 뜻에 저항하게 할 뿐이다.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복종하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며 소망임을 하나님께서는 알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순종할 때까지 우리와 더불어 씨름하신다.

(창32:25)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마16: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마26:33)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눅22:61-62) (61)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62)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야곱과의 씨름에서 하나님은 야곱을 이기지 못하였다고 말씀하셨다. 씨름의 결과는 야곱의 승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야곱의 힘이 하나님의 힘보다 강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하심의 표현이다. 만약에 야곱을 향하신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없었다면 야곱은 결코 얍복 강변의 기도에서 축복을 받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3) 축복의 이름 이스라엘

  그는 축복을 구했고 결국 얻어내었다. 그의 이름이 야곱(발 뒷꿈치를 잡은 자, 속이는 자)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겨룬 자"를 의미하는 이스라엘로 바뀌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자신보다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생활로의 전환을 시작한 것이다.

(창32:28)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새 이름은 새 품성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러한 새 품성은 싸움을 통하여 이와 같은 새로운 품성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복종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것만큼 승리를 얻게 될 것이다.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는 방법은 우직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이다.

 어둠이 지나면 해가 뜨듯이 얍복 강변에 동이 트고 있다. 이 날은 야곱의 생애에서 가장 찬란한 빛을 발한 날이다. 하나님과의 씨름에서 축복을 받은 야곱, 그는 이 축복으로 인하여 에서의 칼날을 화해와 감격의 눈물로 바꿀 수 있었다. 즉 칼날에 맞선 결단의 기도는 원한의 증오에서 사랑의 눈물을 창조하는 위력을 보여, 에서와 야곱은 눈물로 상봉하게 되었다.

 

(잠16:7)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야곱은 하나님과의 대면에서 환도뼈가 위골되고 다리를 저는 축복의 흔적을 받았듯이, 바울 사도 역시 “주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고 고백하였다.

(갈6: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따라서 우리 역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흔적을 지녀야 한다. 왜냐하면 비록 우리가 회개의 흔적, 믿음의 흔적, 순종의 흔적을 받을 때에 뼈가 위골되는 듯한 아픔을 겪는다 하더라도 그러한 흔적이 오히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축복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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