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10:13-14) 사울의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저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14)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저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돌리셨더라
(행13:21-22) 그 후에 저희가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22)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사울은 왕이 되기 전에 겸손한 사람이었지만, 왕으로 등극한 후에 왕의 본분을 벗어나 직접 제사드렸을 뿐 아니라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불순종한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사무엘에게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나를 돌이켜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이루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삼상 15:11) 고 말씀 하셨고, 또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통해서 사울 왕에게“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삼상15:23) 말씀하시고 왕위를 폐(廢)하셨다.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은 하나님을 근심케 하고 슬프게 했던 불순종의 사람이었고, 악한 왕이었다.
1. 사울의 출신과 생애
1) 베냐민 사람 기스의 아들
(삼상9:1-2) 베냐민 지파에 기스라 이름하는 유력한 사람이 있으니 그는 아비엘의 아들이요 스롤의 손자요 베고랏의 증손이요 아비아의 현손이라 베냐민 사람이더라 (2)기스가 아들이 있으니 그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는 더하더라
<사울, Saul>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그 이름 뜻은 ‘구하여 얻은 자’이다.
40세에 왕이 되었으며 재위 기간은 40년이다.
(1) 베냐민 지파
사울은 베냐민 지파에 권세 있는 집안 출신으로 용모가 준수하고 건장한 체격이었다.
당시 베냐민 지파는 여러 지파 중에 가장 약했다.
그 이유는 사사시대 말기에 레위인의 첩 살해사건으로 인해 베냐민 지파가 이스라엘 온 지파의 대적이 되어 거의 전멸되었기 때문이다. (삿19~21장)
이러한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사울이 왕으로 등극할 때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삼상 10:27) 라고 비판적으로 말하는 비류(匪類)들이 있었는데, 이것은 베냐민 지파와 사울 가문을 멸시하는 말이었다.
(2) 유력한 사람
유력한 사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깁보르 하일’은 ‘권력과 힘이 있는 용사’라는 뜻이다.
사울은 베냐민 지파에서 힘 있는 용사 집안 출신임을 말하고 있다.
2) 주요 사건
(1) 사무엘을 만남 (삼상 9:10)
(2) 기름 부음을 받음 (삼상 10:1)
(3) 40세에 이스라엘 초대 왕으로 옹립(擁立)됨 (삼상 10:17~24, 삼상 13:1)
(4) 길르앗 야베스에서 암몬과 싸워 승리함 (삼상 11:1~11)
(5) 길갈에서 대관식을 함 (삼상 11:12~15)
(6) 믹마스에서 블레셋과 싸워 승리함 (삼상 13:1~14:46)
망령된 제사를 드림 (삼상13:8~15)
금식령을 내림 (삼상 14:24-46)
(7) 아멜렉과 전투와 불순종(삼상 15장)
(8)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음 (삼상 16:1~13)
(9) 엘라 골짜기에서 블레셋과 전투, 다윗이 골리앗을 죽임 (삼상 17장)
(10) 다윗을 주목하기 시작함 (삼상 18:6~9)
(11) 다윗을 사위로 맞음 (삼상 18:17~29)
(12) 다윗이 사울에게서 피신함 (삼상 19, 20장)
(13) 놉의 제사장들을 살해함 (삼상 21, 22장)
(14) 다윗을 죽이려 수색함 (삼상 23, 24, 26장)
(15) 사무엘의 죽음 (삼상 25:1)
(16) 신접한 여인을 찾아감 (삼상 28장)
(17) 길보아 산에서 블레셋과 전투 중 자결하여 죽음 (삼상 31장)
2.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해서 폐함을 입은 사울 왕의 재위 기간은 다윗과 같은 40년이었다.
불순종의 사람 사울 왕에게 허락하신 40년은 사울 왕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 의인들에게는 ‘고통의 시간’이었지만, 사울 왕에게는 자신의 불순종을 돌이키며 회개할 수 있는 기회 즉,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사울 왕은 불순종의 길에서 끝까지 돌이키지 않고 자결하여 생을 마감한다.
사울이 왕으로 재위하는 40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은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거절하고 ‘사람 왕’을 구한 악하고 어리석은 선택의 결과를 보았고, 여호와 하나님께는 그 마음에 합한 사람인 ‘선한 왕’ 다윗을 예비하셨다.
(잠28:12) 의인이 득의하면 큰 영화가 있고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이 숨느니라
(잠28:28)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이 숨고 그가 멸망하면 의인이 많아지느니라
(잠5:21)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 앞에 있나니 그가 그 모든 길을 평탄케 하시느니라
1) 겸손했던 사울
(삼상9:18~21) 사울이 성문 가운데 사무엘에게 나아가 가로되 선견자의 집이 어디인지 청컨대 내게 가르치소서 (19)사무엘이 사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선견자니라 너는 내 앞서 산당으로 올라가라 너희가 오늘날 나와 함께 먹을 것이요 아침에는 내가 너를 보내되 네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네게 말하리라 (20)사흘 전에 잃은 네 암나귀들을 염려하지 말라 찾았느니라 온 이스라엘의 사모하는 자가 누구냐 너와 네 아비의 온 집이 아니냐 (21)사울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오며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사울이 속한 베냐민 지파는 그 당시 미약한 지파로 몰락한 상황이었지만, 그의 가문은 유력한 집안이었다. 그러나 사무엘 앞에선 사울은 오히려 자신과 자기 가문을 낮추어 겸손한 태도를 보인다.
겸손했던 사울은 왕이 된 후에도 겸손의 태도를 지켰어야 하지만, 자기 위치를 망각하고 번제를 드렸고,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며 교만해졌다.
2) 하나님의 기름 부음과 사울의 능력
(삼상10:6~9) 네게는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7)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8)너는 나보다 앞서 길갈로 내려가라 내가 네게로 내려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리니 내가 네게 가서 너의 행할 것을 가르칠 때까지 칠 일을 기다리라 (9)그가 사무엘에게서 떠나려고 몸을 돌이킬 때에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셨고 그 날 그 징조도 다 응하니라
(삼상11:5~7) 마침 사울이 밭에서 소를 몰고 오다가 가로되 백성이 무슨 일로 우느냐 그들이 야베스 사람의 말로 고하니라 (6)사울이 이 말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매 그 노가 크게 일어나서 (7)한 겨리 소를 취하여 각을 뜨고 사자의 손으로 그것을 이스라엘 모든 지경에 두루 보내어 가로되 누구든지 나와서 사울과 사무엘을 좇지 아니하면 그 소들도 이와 같이 하리라 하였더니 여호와의 두려움이 백성에게 임하매 그들이 한 사람같이 나온지라
사울 왕은 아버지의 잃어버린 나귀 한 마리도 자기 힘으로 찾을 능력이 없는 연약한 사람일 뿐이었지만,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었을 때 강력한 능력을 발휘한다.
걸작은 도구가 아닌 그 도구를 다루는 예술가의 능력에서 나온다.
화가의 붓은 언제든지 새것으로 바뀔 수 있고, 무뎌진 조각가의 칼도 새것으로 교체된다.
예술가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심혈을 기울여 작품을 만든다.
예술가에게 필요한 것은 ‘도구의 화려함’이 아니라 ‘도구의 편리함’이다.
예술가의 재능이 발휘되기 위해서는 ‘외모가 화려한 도구’가 아닌 ‘쓰기에 편리한 도구’가 필요하다.
예술가의 뜻대로 되지 않는 도구는 버려지게 되고 새것으로 교체된다.
기름 부은 받은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은 ‘순종’이다.
하나님에게 순종하지 않는 기름 부음 받은 왕은 불편해서 버려지는 예술가의 도구와 같다.
그래서 사무엘은 불순종한 사울 왕에게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삼상15:22-23) 라고 말했다.
‘예술가에게서 버림받은 도구’는 더 이상 걸작을 만들지 못하듯이 ‘하나님이 버린 사울 왕’에게서는 더 이상 하나님의 능력도 나타나지 않았다.
3) 왕으로 등극한 사울
(삼상11:12~15)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사울이 어찌 우리를 다스리겠느냐 한 자가 누구니이까 그들을 끌어내소서 우리가 죽이겠나이다 (13)사울이 가로되 이 날에는 사람을 죽이지 못하리니 여호와께서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 구원을 베푸셨음이니라 (14)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 (15)모든 백성이 길갈로 가서 거기서 여호와 앞에 사울로 왕을 삼고 거기서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리고 사울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거기서 크게 기뻐하니라
초대 왕 사울은 이스라엘 민족의 요구로 세워진 왕이다. 외모는 짝할 사람이 없을 만큼 훌륭했고, 겉으로 드러난 성품은 겸손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왕좌에 앉았을 때 그의 교만이 드러났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요구를 들어주셨지만, 그 결국을 알고 계셨다.
초대 왕 사울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의 왕 됨을 거절하고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 우리도 열방과 같이 되어 우리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 (삼상 8:19-20) 라고 하나님에게 요구하는 ‘그들이 구한 왕’ ‘그들이 택한 왕’ ‘그들의 왕’ 하나님을 배제 시킨 ‘우리 왕’이었다.
선지자 사무엘과 대면한 사울의 외모는 출중했고 성격은 겸손했으며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사람의 본모습은 시험을 통과할 때 드러났다.
섬기는 종의 위치에 있을 때 겸손하게 보이던 사람도 주인의 자리에 앉을 때 겸손이 사라지고 교만이 드러나게 된다.
그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 아니라 종의 신분으로 자기 역할에 충실했던 것뿐이다.
그것은 겸손이 아니라 겸손을 가장한 외식일 뿐이다.
선군(善君)의 재목처럼 보였던 사울은 왕의 보좌에 올랐을 때, 교만이 드러났다.
사울에게 허락된 왕좌는 사울의 교만을 드러내는 자리였고, 그 민족에게는 그들이 요구한 ‘그들이 구한 왕’ ‘그들이 택한 왕’ ‘그들의 왕’에 실체를 드러내는 자리였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왕’ ‘우리 왕’을 구한 이스라엘의 악한 요구를 들어주셨고, 그들의 요구대로 세워진 불순종한 사울 왕을 통해서 그 민족을 책망하시는 것이다.
사울은 미스바에서 왕으로 선출되었을 때 행구 뒤에 숨어 있었다.
(삼상10:21-22) 베냐민 지파를 그 가족대로 가까이 오게 하였더니 마드리의 가족이 뽑혔고 그 중에서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혔으나 그를 찾아도 만나지 못한지라 (22)그러므로 그들이 또 여호와께 묻되 그 사람이 여기 왔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그가 행구 사이에 숨었느니라
행구 뒤에 숨은 사울의 모습은 겸손(謙遜)한 면보다는 소심(小心)한 면이 더 크게 보인다.
사울은 이미 이전에 사무엘을 만나 기름 부음을 받은 후였지만, 행구 뒤에 숨는 소심한 사람이었다.
‘맞지 않는 옷’을 입으면 자신은 불편하고 남들에게는 우스워 보이기에 빨리 벗는 것이 지혜이다.
또, 귀한 옷을 입은 사람은 옷에 합당한 품위를 가져야 입은 옷의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어 왕으로 임명하고, 이스라엘 민족 앞에 공식적으로 왕으로 등극한 사울은 하나님께서 입혀주신 왕의 옷에 합당한 품행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야 했지만, 사울 왕은 하나님 앞에서 교만했고,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였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왕을 요구할 것을 미리 아셨고, 모세를 통해 신명기 성경에서 ‘왕의 자격’과 ‘왕의 도리’와 ‘왕이 반드시 따라야 할 법’을 기록하셨다.
(신17:14~20)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이르러서 그 땅을 얻어 거할 때에 만일 우리도 우리 주위의 열국같이 우리 위에 왕을 세우리라는 뜻이 나거든 (15)반드시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자를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며 네 위에 왕을 세우려면 네 형제 중에서 한 사람으로 할 것이요 네 형제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세우지 말 것이며 (16)왕 된 자는 말을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말을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17)아내를 많이 두어서 그 마음이 미혹되게 말 것이며 은금을 자기를 위하여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18)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 보관한 이 율법서를 등사하여 (19)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서 그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20)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의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
① 왕의 자격
이스라엘 형제 중에서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자
② 왕의 도리
말(馬, horse)을 많이 두지 말 것
아내를 많이 두지 말 것
은금을 자기를 위하여 많이 쌓지 말 것
③ 왕의 법도
여호와의 율법을 평생 가까이 두고 읽으라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라
여호와의 율법과 규례를 지켜 행하라
사울은 여호와 하나님의 법을 자기의 법으로 삼고 평생 하나님의 법을 떠나지 말고 선한 왕이 되도록 노력했어야 했지만, 왕이 된 이후 사울의 모습은 하나님의 생각이 아닌 자기 생각을 따르고, 하나님의 법이 아닌 자기 법을 따라가다 결국은 왕위에서 폐하여졌을 뿐 아니라, 한 날에 세 아들 또한 동시에 죽어 사울 왕가는 완전히 몰락했다.
(삼상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사람의 보는 것과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사람은 육신의 만족을 기뻐하고 눈앞에 이익을 위해서 살지만, 하나님은 그 결국을 알고 계신다.
그래서 ‘육신의 눈’으로 환경을 보는 것이 아닌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는 것이 지혜이다.
3. 사울의 전쟁
(삼상14:47-48) 사울이 이스라엘 왕위에 나아간 후에 사방에 있는 모든 대적 곧 모압과 암몬 자손과 에돔과 소바의 왕들과 블레셋 사람을 쳤는데 향하는 곳마다 이기었고 (48)용맹 있게 아말렉 사람을 치고 이스라엘을 그 약탈하는 자의 손에서 건졌더라
(삼상14:52) 사울의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과 큰 싸움이 있었으므로 사울이 힘있는 자나 용맹 있는 자를 보면 그들을 불러 모았더라
1) 사울 왕의 주요 전쟁
(1) 길르앗 야베스 전투 - 사울이 암몬 족속과 벌인 전투 (삼상 11장)
길르앗 야베스는 요단 동편의 이스라엘 땅으로서 인근에 있는 암몬 족속 나하스 군대가 침략해 오자 요단 서편 기브아에서 농사를 짓고 살던 사울은 이 소식을 듣고 즉각 베섹에 군대를 소집하였다. 소집된 33만 명의 군사는 곧장 요단강을 건너 길르앗 야베스로 가서 암몬을 무찌르고 길르앗 야베스를 위기에서 구해 주었다.
(2) 믹마스 전투 - 사울이 블레셋 족속과 벌인 전투 (삼상 13:1-14:46)
사울이 왕으로 등극하기 전에 엘리 대제사장의 아들들이 전사하고 법궤까지 빼앗긴 블레셋과의 전쟁 이후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끊임없는 위협과 지배하에 있었다(삼상 4-5장). 이에 빼앗긴 영토 회복과 선민으로서의 자존심 회복을 위해 벌인 전투가 믹마스 전투다. 이 전투에서 사울은 2천 명의 군사로 기브아에서 믹마스로 향하였고, 사울의 아들 요나단은 1천 명의 군대로 게바에 있는 블레셋 주둔군과 총독부를 기습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이 소식을 듣고 블레셋 군대가 믹마스에 집결하여 큰 전투가 벌어지게 된다. 이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요나단이 이끄는 부대의 전공에 힘입어 큰 승리를 거두었다.
(3) 아말렉 전투 - 사울이 아말렉 족속과 벌인 전투 (삼상 15:1-9)
아말렉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당시 대열의 후미를 공격하며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부족이다(출 17:8-16). 하나님은 이들을 철저하게 진멸하도록 명령하셨다. 이에 사울은 군대를 동원하여 아말렉을 정복하였지만, 아말렉 왕 아각을 죽이지 않고 생포했으며, 아말렉 족속의 좋은 소와 가축들은 전리품으로 남겨 두었다. 결국 사울이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버림 받는 계기가 된 전투다.
(4) 엘라 전투 - 사울이 블레셋 족속과 벌인 전투 (삼상 17장)
이스라엘 군대가 다시 블레셋 군대와 접전을 벌이게 된 곳은 기브아 남서쪽 32㎞ 지점에 위치한 엘라 골짜기였다. 사울 왕과 이스라엘 백성이 골리앗으로 인해 두려워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용하셔서 골리앗을 죽이고 전쟁에서 승리케 하셨고, 블레셋은 국경 근처 에그론과 가드까지 격퇴당한다.
(5) 길보아 전투 - 사울이 블레셋 족속과 벌인 전투 (삼상 28-31장)
이스라엘과 블레셋과의 전투로, 사울 왕은 전투에 임하기 전에 신접한 여인을 만나 이미 죽은 사무엘을 초혼(招魂)하는 망령된 행동을 한다. 사울과 블레셋은 길보아 산에서 싸우게 되는데, 이곳에서 사울의 세 아들 요나단, 아비나답, 말기수아도 전사하고, 사울 왕도 중상을 입고 자결하면서 사울 왕 40년 통치 불순종의 시대는 끝난다.
* 신접한 여인을 통해 죽은 사무엘을 부를 수 있는가?
죽은 자의 영혼은 부를 수가 없다.
죽어서 낙원에 간 나사로와 음부로 내려간 부자(눅16:22-31)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이미 죽은 자는 다시 이 땅에 올 수 없다.
그렇다면 신접한 여인이 불러온 사무엘은 누구인가?
사울 왕은 사무엘을 직접 보지 못하고 신접한 여인에게 전해 들은 내용을 통해서 사무엘이라고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악령인 마귀도 얼마든지 사무엘로 가장할 수 있다. 그래서 여기에서 나온 사무엘은 진짜 사무엘이 아니라 사무엘로 가장한 악한 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신18:11)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의 중에 용납하지 말라
(레19:31) 너희는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지 말며 그들을 추종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전3:20~22)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21)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22)그러므로 내 소견에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이는 그의 분복이라 그 신후사를 보게 하려고 저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
2) 누구를 위한 싸움인가?
(삼상15:12)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려고 아침에 일찌기 일어났더니 혹이 사무엘에게 고하여 가로되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돌이켜 행하여 길갈로 내려갔다 하는지라
사울 왕은 재위 기간 중 주변 이방 나라와 여러 번의 전쟁을 한다.
이 전쟁은 누구를 위한 싸움인가?
바울 사도는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4:7) 라고 했다. 바울 사도는 선한 싸움을 싸웠다. 그는 자기를 위해 싸운 것이 아니라 이방인의 사도로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싸웠다.
선한 싸움은 자기를 위한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싸움이다.
사울 왕은 누구를 위해서 싸운 것일까?
첫 번째 전쟁인 길르앗 야베스 전투의 승리로 사울은 백성들의 지지를 얻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공식적으로 옹립(擁立)되었다.
두 번째 전쟁인 믹마스 전투에서는 자기 위치를 벗어나 망령된 제사를 드렸고, 왕명으로 금식령을 선포하여 백성들을 심히 피곤하게 만들어 전리품으로 탈취한 짐승들을 피 채 먹어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게 하였다.
세 번째 전쟁인 아말렉 전투에서는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였고,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웠다. 사울은 불순종으로 인해 폐위(廢位)되었지만, 왕좌에서 스스로 물러나지 않았다.
네 번째 전쟁인 엘라 전투에서는 후대 왕으로 기름 부음 받은 다윗이 등장하여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죽이고 이스라엘에 승전고(勝戰鼓)를 울렸지만, 다윗의 인기가 치솟자 다윗을 질투하여 죽이려고 지속적으로 쫓아 다녔다.
마지막 전쟁인 길보아 전투에 나가기 전 하나님께서 율법으로 엄히 금하시는 신접한 여인을 만나 죽은 사무엘을 초혼(招魂)하여 율법을 범하였다. (레19:31, 신18:11)
그리고 이 마지막 전쟁에서 세 아들이 블레셋에게 살해당하고, 사울 자신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생을 마감한다.
사울 왕은 누구를 위해 싸웠는가?
사울 왕의 칼날은 하나님의 대적자들을 향해 있었지만,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승리의 면류관은 자기 머리에 쓰기를 원했고, 승전비에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아닌 자기 이름을 새겨 기념했다.
사울 왕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아닌 ‘자기 이름을 위한 기념비’를 세웠고, 여호와 하나님의 법이 아닌 ‘자기 법’으로 이기려 했고, 여호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선택이 아닌 ‘자신이 보기 좋은 선택’을 했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기의 뜻’을 이루기를 원했다.
사울 왕은 ‘여호와 하나님이 군사(軍士)’가 되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사람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군주(君主)’가 되어서 자기의 기쁨을 위해 싸운 ‘악한 왕’이었다.
(딤후2:4)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3) 누구를 위한 열심인가?
(삼상14:47~52) 사울이 이스라엘 왕위에 나아간 후에 사방에 있는 모든 대적 곧 모압과 암몬 자손과 에돔과 소바의 왕들과 블레셋 사람을 쳤는데 향하는 곳마다 이기었고 (48)용맹 있게 아말렉 사람을 치고 이스라엘을 그 약탈하는 자의 손에서 건졌더라 (49)사울의 아들은 요나단과 리스위와 말기수아요 그 두 딸의 이름은 이러하니 맏딸의 이름은 메랍이요 작은 딸의 이름은 미갈이며 (50)사울의 아내의 이름은 아히노암이니 아히마아스의 딸이요 그 군장의 이름은 아브넬이니 사울의 숙부 넬의 아들이며 (51)사울의 아비는 기스요 아브넬의 아비는 넬이니 아비엘의 아들이었더라 (52)사울의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과 큰 싸움이 있었으므로 사울이 힘있는 자나 용맹 있는 자를 보면 그들을 불러 모았더라
사울 왕은 게으른 사람이 아니다.
다윗 왕은 게으름에 빠져 간음죄와 살인죄를 지었지만, 사울 왕은 그러하지 않았다.
사울 왕은 근면 성실한 왕이었다.
사울 왕은 재위 기간 대부분 적국과 싸웠고, 편안한 침상이 아닌 전장에서 치열하게 싸우다 죽었다.
그러나 사울 왕의 열심은 자기를 위한 열심이었다.
사울 왕의 잘못된 열심은 도리어 여호와 하나님을 근심되게 하였다.
바벨탑을 쌓은 니므롯과 그 시대 사람들의 열심은 어떠하였는가?
니므롯을 따라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의 열심은 참으로 대단하지만, 그 열심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열심이었다.
‘순종하는 열심’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만, ‘거역하는 열심’은 하나님을 근심되게 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열심은 ‘주를 섬기는 열심’이다.
(롬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사울 왕의 열심은 주를 위한 열심이 아닌 자기를 위한 열심이었다.
사울 왕의 열심은 하나님의 기업이 아닌 자기 기업을 위한 열심이었다.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이 아니라 ‘사울의 나라’ 즉 ‘사울 왕가(王家)’를 위해 최선을 다해 싸웠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기의 기업의 백성을 삼으셨느니라”(신14:2) 고 하셨다.
여호와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왕의 의무는 여호와 성민인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이 되도록 다스려야 하는 것이었지만, 사울 왕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과 달랐기에 오히려 그의 열심은 도리어 하나님을 근심되게 했다.
4) 누구의 나라인가?
(대상12:20~23) 다윗이 시글락으로 갈 때에 므낫세 지파에서 그에게로 돌아온 자는 아드나와 요사밧과 여디아엘과 미가엘과 요사밧과 엘리후와 실르대니 다 므낫세의 천부장이라 (21)이 무리가 다윗을 도와 적당을 쳤으니 저희는 다 큰 용사요 군대 장관이 됨이었더라 (22)그 때에 사람이 날마다 다윗에게로 돌아와서 돕고자 하매 큰 군대를 이루어 하나님의 군대와 같았더라 (23)싸움을 예비한 군대 장관들이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로 나아와서 여호와의 말씀대로 사울의 나라를 저에게 돌리고자 하였으니 그 수효가 이러하였더라
(삼상10:1) 이에 사무엘이 기름병을 취하여 사울의 머리에 붓고 입맞추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그 기업의 지도자를 삼지 아니하셨느냐
세상의 왕들은 자신들이 그 나라의 소유자라고 주장한다. 그 나라의 백성은 자기 백성이고, 그 나라의 영토는 자기 영토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 나라의 주권자(主權者)가 되어 자기의 지혜와 능력으로 통치한다. 왕들의 탐욕은 끝이 없어서 더 큰 주권자가 되기 위해 다른 나라를 정복하고 제국을 이루어 스스로 천하를 다스리는 황제(皇帝)라 일컫는다.
이스라엘은 열국과 다르다. 이스라엘의 왕은 열국의 왕들과 달라야 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만민 중에 선택한 나라이며, 그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소유자이시고, 주권자이시며 진짜 왕이시다.
여호와 하나님은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딤전 6:15, 계 19:16)가 되신다.
하나님께서 선택한 이스라엘 백성은 사울의 백성이 아니고 이스라엘은 ‘사울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민(聖民)’이며, ‘하나님의 나라’이다.
이스라엘의 주권자(主權者)는 사울 왕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사울 왕은 이스라엘 백성이 참된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선택된 그들의 왕이었다.
이스라엘은 선한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그들이 택한 왕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있다.
그들이 선택한 사람 왕은 백성을 위한 왕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한 왕이었다.
그래서“너희가 그 종이 될 것이라” (삼상 8:17) 는 사무엘 선지자의 경고를 듣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사울 왕가를 위해서 싸우게 되는 것이다.
(대상10:13-14) 사울의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저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14)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저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돌리셨더라
이스라엘의 참된 주권자와 참된 왕 되신 여호와 하나님은 ‘사울의 백성’을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시키기 위해서 ‘악한 종 사울의 나라’에서 ‘선한 종 다윗의 나라’로 바꾸셨다.
4. 사울의 교만과 불순종
(잠29:23)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1) 사울의 제사
(삼상13:8~15) 사울이 사무엘의 정한 기한대로 이레를 기다리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9)사울이 가로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10)번제 드리기를 필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 (11)사무엘이 가로되 왕의 행한 것이 무엇이뇨 사울이 가로되 백성은 나에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12)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은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치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 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13)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셨을 것이어늘 (14)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 하고 (15)사무엘이 일어나 길갈에서 떠나 베냐민 기브아로 올라가니라 사울이 자기와 함께한 백성을 계수하니 육백 명 가량이라
블레셋과 전투를 앞둔 사울 왕은 블레셋의 군사력을 보고 그 백성들과 함께 두려워하고 있다.
사울 왕은 두려움과 절박함으로 불순종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사울 왕은 사무엘 선지자를 기다리지 못하고, 왕의 위치를 벗어나 왕이 드려서는 안 되는 제사를 드리게 된다. 왕이 제사드리는 것은 권한 밖의 일을 하는 월권(越權)이며 교만이다.
사무엘 선지자의 책망을 들은 사울 왕은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삼상 13:12)라고 말하며 핑계를 댄다.
사울의 세 가지 변명
① 백성은 나에게 흩어지고
② 당신은 정한 날에 오지 아니하고
③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다윗의 세 가지 믿음
① 여호와께서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리이다 (삼상 17:37)
②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삼상 17:45)
③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삼상 17:47)
사울 왕에게 부족한 세 가지 믿음
① 왕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바라보게 해야 하고
② 끝까지 기다려야 하고
③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군대를 보아야 한다.
사울 왕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고 블레셋 대군(大軍)이 아닌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사울 왕은 하나님을 경외(敬畏)하는 마음 즉,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높이며 공경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가 부족했던 사울 왕은 적국의 군사력을 보고 두려워하여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을 쉽게 범했다.
이스라엘의 왕과 백성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며 공경해야 하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사울 왕은 적국 블레셋의 군사력을 보고 두려워하였고, 자신을 떠나는 백성들의 모습을 보고 두려워하여 왕의 위치를 벗어나 제사장이 드려야 할 제사를 드리는 죄를 범한 것이다.
(삼상15:24)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이스라엘의 왕은 백성들의 인기와 지지로 얻은 선출직(選出職)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임명직(任命職)이다.
그러나 사울 왕은 하나님이 주신 왕위를 자기 힘으로 지키려 하고 백성들의 지지로 유지 시키려 한다. 그래서 골리앗을 죽인 다윗의 인기가 높아지자 시기 질투하고, 자신의 왕위에 위협이 되는 위험인물로 지목하고 죽이려 했다.
사울 왕은 자신을 왕으로 임명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敬畏)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잠29:25)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2) 사울의 법
(삼상14:24~35) 이 날에 이스라엘 백성이 피곤하였으니 이는 사울이 백성에게 맹세시켜 경계하여 이르기를 저녁 곧 내가 내 원수에게 보수하는 때까지 아무 식물이든지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백성이 식물을 맛보지 못하고 (25)그들이 다 수풀에 들어간즉 땅에 꿀이 있더라 (26)백성이 수풀로 들어갈 때에 꿀이 흐르는 것을 보고도 그들이 맹세를 두려워하여 손을 그 입에 대는 자가 없으나 (27)요나단은 그 아비가 맹세로 백성에게 명할 때에 듣지 못하였으므로 손에 가진 지팡이 끝을 내밀어 꿀을 찍고 그 손을 돌이켜 입에 대매 눈이 밝아졌더라 (28)때에 백성 중 하나가 고하여 가로되 당신의 부친이 맹세로 백성에게 엄히 명하여 말씀하시기를 오늘날 식물을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백성이 피곤하였나이다 (29)요나단이 가로되 내 부친이 이 땅으로 곤란케 하셨도다 보라 내가 이 꿀 조금을 맛보고도 내 눈이 이렇게 밝았거든 (30)하물며 백성이 오늘 그 대적에게서 탈취하여 얻은 것을 임의로 먹었더면 블레셋 사람을 살륙함이 더욱 많지 아니하였겠느냐 (31)그 날에 백성이 믹마스에서부터 아얄론에 이르기까지 블레셋 사람을 쳤으므로 그들이 심히 피곤한지라 (32)백성이 이에 탈취한 물건에 달려가서 양과 소와 송아지들을 취하고 그것을 땅에서 잡아 피 있는 채 먹었더니 (33)무리가 사울에게 고하여 가로되 보소서 백성이 고기를 피 채 먹어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사울이 가로되 너희가 무신하게 행하였도다 이제 큰 돌을 내게로 굴려 오라 하고 (34)또 가로되 너희는 백성 중에 흩어져 다니며 이르기를 사람은 각기 소와 각기 양을 이리로 끌어다가 잡아 먹되 피 있는 채 먹어서 여호와께 범죄하지 말라 하매 그 밤에 모든 백성이 각각 자기의 소를 끌어다가 거기서 잡으니라 (35)사울이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으니 이는 그가 여호와를 위하여 처음 쌓은 단이었더라
왕의 칙령(勅令)은 국법(國法)이다. 반드시 지켜야 하는 법이다.
왕권이 강할수록 왕의 칙령은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사울 왕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왕의 칙령으로 금식령을 내린다.
이스라엘의 왕은 여호와 하나님의 종이다.
하나님의 종인 이스라엘 왕은 ‘법을 제정하는 위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법을 수호하는 위치’에 있다.
그러나 사울 왕은 ‘법의 수호자’가 아닌 ‘법의 제정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법’보다 ‘왕의 법’을 따르게 하고, 결국 악한 왕의 법을 따르던 군사들은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 채 먹지 말 것이라” (창9:4, 레 17:10-14, 신 12:23-25) 는 하나님의 법을 범하게 된다.
세상 법에도 모든 법률은 상위법이 하위법에 우선하여 적용되는 ‘상위법 우선 원칙’이 있다.
따라서 가장 상위법인 헌법은 모든 법보다 가장 우선으로 지켜야 하는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법은 사울 왕이 무엇보다 존중하고 반드시 지켜야 하는 ‘최상위의 법’이다.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이 왕의 칙령인 금식령을 모르고 꿀을 찍어 먹고 힘을 내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사울 왕은 전쟁의 승리보다 왕의 법을 범한 아들 요나단에게 분노하고 죽이려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 법을 어긴 백성들을 향한 사울 왕의 태도는 어떠했는가?
“너희가 무신하게 행하였도다” (삼상 14:33)
고기를 피 채 먹어 여호와께 범죄 한 백성들에게 사울이 한 말이다.
백성들이 피 채 고기를 먹게 된 이유는 사울 왕이 내린 금식령 때문이었다.
사울 왕은 자기 과실(過失)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태도를 보여야 했지만, 범죄의 책임을 백성에게 전가하는 비겁하고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한다.
하나님이 정하신 위치를 벗어나 망령된 제사를 드렸던 사울 왕은 이제 더욱 교만해져서 자기의 법을 만들고 하나님의 백성을 자기 백성으로 삼아 자기의 법을 지키도록 강요하고 있다.
3) 사울의 불순종
(삼상15: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어 왕에게 기름을 부어 그 백성 이스라엘 위에 왕을 삼으셨은즉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2)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을 내가 추억하노니 (3)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삼상15:8~11)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사로잡고 칼날로 그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으되 (9)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키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낮은 것은 진멸하니라 (10)여호와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11)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이루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 명하셨지만, 사울 왕과 백성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아말렉을 진멸치 아니하고, 아각 왕을 생포했으며, 가축을 다 죽이지 않고 우량(優良)한 가축은 살려서 전리품으로 남겼다.
사무엘 선지자의 책망을 들은 사울 왕의 변명과 핑계는 다음과 같다.
사울 왕의 변명과 핑계
①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하여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삼상 15:15)
②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취하였나이다 (삼상15:21)
하나님의 명령을 다 준행(遵行)할 때가 진짜 순종이다. 선택적인 순종은 불순종이다.
사울은 이번에도 회개하는 태도가 아닌 백성들에게 죄의 책임을 전가하는 ‘비겁한 왕’의 모습을 보인다. 이렇게 여전히 회개하지 않는 사울 왕의 완고하고 교만한 태도는 하나님을 분노하게 하였고, 결국 그는 왕위에서 폐위(廢位)되어 버려진다.
(삼상15:22-23)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23)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4) 사울의 기념비
(삼상15:11-12)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이루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12)사무엘이 사울을 만나려고 아침에 일찌기 일어났더니 혹이 사무엘에게 고하여 가로되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돌이켜 행하여 길갈로 내려갔다 하는지라
사울 왕은 아말렉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승전비(勝戰碑)를 세웠다.
그런데 여호와의 이름을 기리는 기념비(記念碑)가 아니라 자기를 높이는 기념비 즉 승전비를 세웠다.
이러한 사울 왕의 악행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할 뿐 아니라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야 할 영광을 도적질하는 죄를 더하는 것이다.
미스바에서 왕으로 옹립될 때 행구 뒤에 숨어 있던 소심하고 겸손했던 사울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왕좌에 앉아 영광을 누리는 교만한 왕의 모습만 남았다.
사울 왕이 늘 하나님의 법을 가까이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면, 기름 부음 받은 왕인 자신도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을 것이고, 왕좌에 앉아 자기 영광만을 외치는 교만한 왕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작은 구멍을 막지 않으면 결국 거대한 댐을 붕괴시키고, 작은 암세포를 방치하면 귀중한 생명을 죽이는 무서운 질병이 된다.
소심하고 겸손했던 사울은 하나님의 권면과 책망을 듣지 않고, 회개하지 않아 폐하여졌다.
사울 왕은 은밀히 자라는 교만의 싹을 방치한 결과 영광이라고 착각한 ‘교만의 왕좌’에 앉아서 자기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한 악한 왕’이 되었다.
침례 요한이 옥에 갇힌 뒤 그의 제자들이 와서 예수그리스도께서 사람들에게 침례를 준 사실을 알릴 때, 침례 요한은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요 3:30) 라고 하였다.
침례 요한의 말은 ‘특별한 대답’이 아니라 ‘당연한 대답’이다.
교만한 사람은 ‘영광의 이름’을 원하지만 겸손한 사람은 ‘충성된 이름’을 원한다.
그래서 교만한 사울 왕은 자기 이름에 영광을 돌렸고, 겸손한 침례 요한은 예수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렸다.
바울 사도는 복음 전파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생명을 아끼지 않았다.
바울 사도는 자기 이름이 아닌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행 21:13) 고 결단하였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후서 4장 7절에서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했다.
바울 사도는 주(主) 예수를 위해서 목숨을 다해 싸웠고 아름답게 생을 마감했다.
군사(軍士, Soldier)는 자신이 충성된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만, 군주(君主, King)는 자기 말을 잘 듣는 충성된 사람을 원한다.
(딤전1: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사울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충성(忠誠)되이 여겨 직분을 맡기셨다.
사울에게 맡긴 왕의 보좌는 사울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잠시 맡기신 자리다.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위에 앉아있어도 주(主)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군사(軍士)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진정한 왕(王) 진정한 군주(君主)라는 진리를 명심해야 했지만, 사울은 여호와 하나님의 군사(軍士)로써 직분을 버리고 백성 위에 군림하는 군주(君主)가 되어 자신이 영광 받기를 원했다.
5) 사울의 후회
(삼상15:24)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삼상26:21) 사울이 가로되 내가 범죄하였도다 내 아들 다윗아 돌아오라 네가 오늘 내 생명을 귀중히 여겼은즉 내가 다시는 너를 해하려 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어리석은 일을 하였으니 대단히 잘못되었도다
후회(後悔, regret)는 잘 못을 뉘우치는 것이지만, 회개(悔改, repentance)는 잘못을 뉘우치고 고치는 것이다.
길을 잃었을 때 그 길을 고집하며 계속 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잘못 가던 방향에서 돌이켜 올바른 길을 찾아야 하고, 올바른 방향을 알지 못하면 처음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지혜이다.
잘못된 생각에 빠지면 그 생각을 버리고 최고의 지혜자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올바른 길을 물어봐야 한다.
사울 왕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만 회개하지는 않았다.
알코올 중독자가 술을 먹고 후회해도 또다시 술을 먹고, 마약 중독자가 마약에서 깬 후 후회하고 또다시 마약에 손을 댄다.
알콜 중독자의 회개는 술을 끊는 것이고, 마약 중독자의 회개는 다시 마약에 손을 대지 않는 것이다.
후회했던 사울은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고, 다윗을 죽이기 위해 쫓아다녔던 자기 모습을 후회했던 사울은 또다시 다윗을 죽이려 했다.
후회했던 왕 사울은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았기에 만왕의 왕 되신 하나님께서 폐하셨고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사울 왕에게 회개할 기회가 적었던 것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은 것이다.
사울 왕은 권력을 향한 탐욕에 사로잡혀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고 결국 폐(廢)해졌다.
(잠28:16) 무지한 치리자는 포학을 크게 행하거니와 탐욕을 미워하는 자는 장수하리라
5. 사울의 시기와 탐욕
(삼상18:6~9) 무리가 돌아올 때 곧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여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성에서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며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왕 사울을 환영하는데 (7)여인들이 뛰놀며 창화하여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8)사울이 이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가로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의 더 얻을 것이 나라밖에 무엇이냐 하고 (9)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삼상20:30-31) 사울이 요나단에게 노를 발하고 그에게 이르되 패역부도의 계집의 소생아 네가 이새의 아들을 택한 것이 네 수치와 네 어미의 벌거벗은 수치됨을 내가 어찌 알지 못하랴 (31)이새의 아들이 땅에 사는 동안은 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 그런즉 이제 보내어 그를 내게로 끌어오라 그는 죽어야 할 자니라
하나님의 일꾼은 서로 동역자(同役者, fellow worker)이며, 동역자는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함께 일하는 사람이다.
일하는 목적이 다른 사람은 함께 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일꾼은 주(主)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서 호흡하고 일해야 한다.
자기의 기쁨과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을 위해 살아야 한다.
그래서 사울 왕과 다윗은 동역자가 될 수 없었다.
다윗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골리앗을 죽였지만, 사울은 ‘자기의 영광’을 위해 전쟁에 임했다.
그래서 골리앗을 죽이고 승리한 전쟁에서 하나님을 위해 적장 골리앗을 죽인 다윗이 칭송받는 것을 불쾌하게 여기고 심히 노하는 것이다.
사울 왕에게 다윗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함께 싸운 ‘동역자’가 아니라 자기 영광을 가로챈 ‘경쟁자’가 되었다.
사울은 왕좌에 앉아있다. 그 자리는 하나님께서 일꾼에게 잠시 맡기신 ‘섬김의 자리’이지만, 사울은 섬김이 아닌 ‘통치의 자리’ ‘지배의 자리’에 앉은 것이다.
겸손했던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이 거하실 집인 성전(聖殿)’을 건축하려 힘썼지만, 사울은 자기 가문인 ‘사울 왕가(王家)’를 건축하고 지키기 위해 다윗을 죽이려 하고 있다.
다음 왕위 계승자인 아들 요나단에게 “너와 네 나라”(삼상 20:31) 라고 말하며 사울 왕가를 물려주려는 계획을 말하고 있다.
사울 왕에게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의 기업인 이스라엘을 함께 건설해 나갈 동역자가 아니었다.
사울 왕에게 다윗은 사울 왕가(王家)를 무너뜨리는 최고의 정적(政敵)이었다.
그래서 사울 왕은 자기 왕가(王家)를 지키기 위해 다윗을 죽이려고 힘썼다.
겸손한 자와 교만한 자
겸손한 자는 섬기려 하지만, 교만한 자는 지배하려 한다.
겸손한 자는 자기 이름을 숨기지만, 교만한 자는 자기 이름을 높인다.
겸손한 자는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리지만, 교만한 자는 자기가 영광을 받는다.
겸손한 자는 주님의 기쁨을 위해 일하지만, 교만한 자는 자신의 기쁨을 위해 일한다.
겸손한 자는 주님의 판단이 중요하지만, 교만한 자는 사람의 판단을 중요시한다.
겸손한 자는 주님이 1등이 되길 원하지만, 교만한 자는 자신이 1등이 되길 원한다.
겸손한 자는 주님의 나라가 부하게 되길 기도하지만, 교만한 자는 자신이 부하게 되길 기도한다.
6. 하나님의 후회를 생각하면서
(삼상15:10-11) 여호와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11)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이루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삼상15:35) 사무엘이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 가서 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사울을 위하여 슬퍼함이었고 여호와께서는 사울로 이스라엘 왕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
전지전능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께서는 후회하지 않으신다.
후회로 번역된 히브리어 ‘나함’의 다른 뜻은 ‘회개하다, 애석해하다, 유감으로 생각하다’이다.
죄악이 충만했던 노아 시대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창 6:7) 라고 하신 말씀에서 ‘한탄함’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가 바로 ‘나함’이다.
후회로 번역된 히브리어 ‘나함’은 죄인들을 향한 슬픈 하나님의 마음을 담은 단어이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의 불순종과 교만을 보고 분노만 하신 것이 아니라 슬퍼하며 탄식(歎息)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에게 아말렉과의 전쟁을 명하시면서 사무엘을 통해서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어 왕에게 기름을 부어 그 백성 이스라엘 위에 왕을 삼으셨은즉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삼상15:1) 라고 말하며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사울의 ‘왕의 자격과 의무’를 분명하게 말했다.
그러나 사울은 기름 부음의 본분을 망각하고 불순종의 길을 택했다.
불순종하는 사울 왕이라도 하나님께서 기름 부은 왕이기에 하나님은 탄식하며 슬퍼하셨다.
(겔18:23)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우리는 사울의 불순종과 타락을 보면서 많은 교훈을 받아야 한다.
사울은 하나님을 근심케 하고 슬프게 한 불순종의 사람이었고 악한 왕이었다.
사울은 왕의 직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릴 40년의 기회가 있었지만, 결국 자기 영광을 구하다가 폐해졌다.
다윗 왕의 재위 기간도 40년이었다.
다윗 왕과 사울 왕은 동일한 나라의 왕이었고, 동일한 기회를 주셨지만, 그들의 결말은 완전히 달랐다.
성경에는 사울 왕을 “사울 왕의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대상 10:13)고 ‘악한 왕’으로 기록하였지만, 다윗 왕은 “저가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하다가 죽으매” (대상 29:28)라고 ‘선한 왕’으로 기록하고 있다.
자서전(自敍傳)은 자기 생애를 생전(生前)에 회고하며 기록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칭찬하는 내용이지만, 위인전(偉人傳)은 훌륭한 인생을 산 사람을 사후(死後)에 평가한 기록이다.
그리스도인의 인생은 자기가 스스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하나님께 평가받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심판대는 자기 스스로 쓴 자서전을 낭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인생을 칭찬하는 자리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난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반드시 설 것이다.
하나님이 보시는 나의 삶은 어떻게 평가될 것인가?
공평하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은혜와 시간을 주셨다.
동일한 기회를 받았던 선한 왕 다윗과 악한 왕 사울의 성경 기록을 보면서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분명한 교훈을 받게 된다.
순종의 길을 완주한 다윗은 선한 왕으로 존귀하게 죽었지만, 불순종의 길을 고집했던 사울은 악한 왕이 되어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우리는 사울과 같은 하나님의 근심이 되는 불순종의 사람이 아니라 다윗처럼 순종하는 충성된 일꾼이 되어서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야 할 것이다.
(잠25:13)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
모세와 출애굽
1.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 출애굽의 역사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큰 일 중에 하나다. 이 놀라운 일을 위해서 하나님은 사람을 준비시켰다. 애굽과 광야에서 80년을 훈련한 모세와 애굽
lifeword.tistory.com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주제말씀 : (엡5:15-17)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lifeword.tistory.com
장대 달린 놋뱀
장대 달린 놋뱀 성경에는 예수님을 설명하는 다양한 표현과 사건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이번 내용은 비교적 짧고, 단순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지만 그 어느 내용보다도 더욱 강력하게 예수님의
lifeword.tistory.com
십계명
깨어진 십계명 1. 아론의 우유부단함 (아론의 역할을 통해 교사들이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가 어때야 하는지에 대해 알아보자.) 아론은 인정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져버리고 지도자의 역할을
lifeword.tistory.com
'중고등부 성경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실패한 자를 다시 일으키시는 주님 (1) | 2024.03.07 |
---|---|
의심많은 도마 (1) | 2024.03.06 |
귀하게 쓰임 받은 사무엘 (1) | 2024.03.04 |
올바른 선택을 한 룻(룻기) (1) | 2024.03.03 |
이성교제 (1) | 2024.03.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