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전 2:22)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벧전 2:23)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벧전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벧전 2: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인간 역사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크고 놀랍게 나타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어 죄인들을 위해 고난을 받게 하셨으며 십자가에서 인간의 모든 죄를 담당케 하셨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고난과 죽음은 그의 죄과와 허물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셨고 그가 맡으신 사역을 겸손히 감당하셨다.
십자가에서
첫째, 하신 일은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둘째, 담당하신 이유는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하심”이다.
셋째, 담당하시고 죽으심의 결과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다가 지금은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분에게 돌아온 것”이다. 이것이 십자가 사건이다.
1. 십자가
1) 원래 의미
❶ 로마: 살인강도, 반란, 노예,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자, 로마 시민 중에서는 국가 반역죄에 해당하는 사람을 죽이는 형벌 (로마시민권은 십자가 형을 받지 않고 참수형에 시킴)
- 그리스 노예 스파르타스쿠스 반란 때 많은 사람을 십자가에 처형
- 알렉산더 대왕이 두로를 공격 할 때에도 많은 사람을 십자가에 처형시킴
- 십자가는 고대에 혐오를 일으키는 사형 형틀로써 십자가 이야기를 들으면 밥 먹다가 숟가락을 놓았다
“십자가형은 가장 잔인하고 혐오스러운 형벌이다.” - 키케로
천번 죽는 것과 같은 고통이 있었다고 이야기 함
❷ 유대인- 이미 구약에선 나무에 달린 자는 저주를 받은 자라 하였다.
(신 21:23)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수 10:26) 그 후에 여호수아가 그 왕들을 쳐 죽여 다섯 나무에 매어 달고 석양까지 나무에 달린 대로 두었다가(수 10:27) 해 질 때에 여호수아가 명하매 그 시체를 나무에서 내리어 그들의 숨었던 굴에 들여 던지고 굴 어귀를 큰 돌로 막았더니 오늘날까지 있더라
사도행전에서 제자들이 주님을 유대인들에게 전할 때 “나무에 달린 그리스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라는 표현을 자주 쓰셨다.
(행 2: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행 5: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행 10:39)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저희가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 왜 예수 그리스도가 나무에 달려 저주를 받았는가?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자신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을런지는 모르지만 사도들은 주님이 나무에 달리신 것은 저주를 받은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은 사실 우리 죄를 위해서, 죄인들을 위해서 저주를 받으셨다는 사실을 담대하게 전했다.
2)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
(갈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골 2:13)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골 2:14)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으시고(골 2:15)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요 19:30)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 “다 이루었다” 는 “승리의 외침, 사랑의 외침, 기쁨의 외침, 절규의 외침”이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예수님이 참혹한 십자가를 지심은 나를 대신해서 내 죄 값을 지불하시기 위함이다.
찬 138장) 1 만왕의 왕 내 주께서 왜 고초 당했나 이 벌레 같은 나 위해 그 보혈 흘렸네
2. 주 십자가 못 박힘은 속죄함 아닌가 그 긍휼함과 큰 은혜 말할 수 없도다
(후렴)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에 내 맘에 큰 고통 제하네. 오늘 믿고서 내 눈 밝았네 참 내 기쁨 영원하도다.”
키에르케 고르 -“인생은 사십부터가 아니다. 이십부터도 아니다. 인생은 십자가로부터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나를 절대적으로 사랑하셨다”는 것을 증명하신 것이다.
십자가는 세상을 향해 하나님이 시간에 구애됨이 없이( timeless) 하시는 말씀이다. “너희 문제는 나의 문제이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하나님은 죄인을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시지 않고 낮고 천한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셔서 죄인(나)을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어주셨다. - 무조건적인 사랑, 영원한 사랑, 완전한 사랑, 일방적인 사랑
(요일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요일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 십자가 사건 (인터넷에서)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우주 최대의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있었던 러브 스토리 (love story) 다. 하나님은 사랑 자체이시고 예수님은 사랑의 화신, 성경은 사랑의 편지, 성령은 사랑의 영, 우리는 그 사랑의 삼일성(三一性) 속에 빨려 들어온 사람들이다.
성도의 기도란 사랑의 밀어(密語), 전도는 사랑의 전달, 사랑의 중개(仲媒), 찬송은 사랑의 노래, 그리고 십자가는 사랑의 드라마의 절정, 사랑의 고백(告白),사랑의 심장파열 사건이다.
십자가는 예수가 하나님과 나의 이름을 부르고 부르다가 죽은 곳, 예수가 한 손으로 내 손을 붙잡고 또 한 손으로는 하나님 손을 붙잡고 사랑의 심장이 터진 곳이 십자가다.
2.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으로 주어진 결과
1) 속죄가 왔다.
(엡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구속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엄청난 큰 댓가를 지불했다“는 의미이다.
2) 화평과 화목이 왔다.
(엡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골 1: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골 1: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3) 평안이 왔다.
(엡2:17)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사57:19) 입술의 열매를 짓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먼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찌어다 평강이 있을찌어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 하셨느니라
4) 하나 됨이 왔다.
(엡 2:15)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엡 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 유대인과 이방인 둘을 “한 몸”즉 주님의 몸된 교회가 되게 하신 것이다.
십자가가 전해지는 곳에는 하나됨이 있다. 예시) 처음만난 사람들도 하나!
(엡 4: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엡 4: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엡 4: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어떻게 하나 될 수 있을까? “십자가의 의미”를 깨달을 때 사랑으로 하나 될 수 있다. 역사 속에서 십자가의 복음이 전해지는 곳은 하나로 만드는 힘이 있다.
❶ 형제 자매를 하나로 묶는 것도 십자가가 더욱 더욱 전해지는 때이다.
❷ 이웃과의 벽을 허는 것도 십자가인 것이다.
이기적인 사람이 이웃에게 화해의 악수를 청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십자가이다. 트러블 메이커에서 피스 메이커가 되게 만든다. 십자가를 참으로 깨달은 자는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풀어주고, 남을 도와주는 사람으로 된다.
5) 하늘 나라의 시민이 되었다.
(엡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빌3: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 우리는 이중 국적을 가진 자가 되었다. 그리고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 있는 것이다.
(히 11: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히 11:14)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6)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다.
(엡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 “to be + circle“ (하나님의 돌보심 가운데 내가 있다)
(시68:6) 하나님은 고독한 자로 가속 중에 처하게 하시며 수금된 자를 이끌어 내사 형통케 하시느니라 오직 거역하는 자의 거처는 메마른 땅이로다
7) 영광스러운 교회의 일원이 되고, 하나님의 처소가 되어서 이 세상에서 주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 엡 2: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엡 2: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하나님 역사의 주된 무대 속에 들어온 자가 되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역사 무대의 주역이었던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역사의 주역인 것이다.
☞ 십자가의 메시지=십자가의 도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의 도는 십자가가 말하는 말씀이다. 십자가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1) 행위로 천국에 가려는 모든 시도를 그만두라. 행위로 천국에 갈 수 있으면 내가 왜 십자가에서 죽었겠느냐? 행위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내가 죽은 것이다.
2)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받은 자라는 말씀대로 나는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았다. 왜 내가 저주를 받았겠느냐? 나는 죄가 없다는 것을 너희들은 잘 알고 있지 않느냐? 그러므로 나는 너희 대신 저주를 받은 것이다.
3) 너희가 아무리 흉악한 죄를 지었을지라도 나는 너희 대신 충분한 댓가를 지불하였다. 그러니 땅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4)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이루어졌다. 이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화평이 이루어졌다. 모든 행위로 천국 가려는 시도를 그만두고 십자가를 붙잡으라.
5) 십자가를 바라보라. 이것이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증거니라. 나는 너희들을 사랑하여 십자가에서 피를 흘린 것이다.
6) 너희들은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고통을 겪을 때 나는 너희보다 더 큰 고통을 받았다는 것을 생각하고 스스로 위로하라. 나는 너희 고통 가운데 동참하고 있음을 잊지 말라.
7) 십자가의 말씀을 거역할 때 너희들에게는 심판을 피할 길이 없으며, 오직 정죄만 남아있는 것이다. 십자가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 그것이 너희가 살 길이니라.
8) 십자가에서 너희도 죽었음을 잊지 말라. 아담 안에 속한 너는 죽은 것이다.
그러므로 옛 생활을 청산하고 주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라. 부활의 새 생명 속에서 살라.
9) 십자가에 못박힌 분이 누구인지를 깊이 생각하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 되는 분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생각하고 나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라. 너희들은 오직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나의 죽음에 걸맞게 삶을 살아서 더 많은 사람으로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보게 하라.
3. 십자가는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고전1:25)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십자가의 도리를 발견한 사람은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건짐받은 후에 하나님의 사랑의 다스리심을 받아서 이 세상에서 살아가게 한다.
십자가의 도리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하며, 사람을 낮추고 겸손하게 하며, 사람으로 하여금 삶의 지혜를 얻게 하며, 희생하고 수고하고 타인을 위한 삶을 살게 하며, 열매를 맺게 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인데, 십자가의 도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게 만드는데 가장 효과가 있는 것이므로 십자가야말로 참된 지혜라고 할 수있다.
1) 무엇이 죄를 없앨 것인가.
역사 속에서 많은 종교들이 있어왔고 사상들이 있어왔다. 그러나 그 어느 것 하나 죄를 없애지는 못하였다.
정죄 아래 있는 인간을 무엇이 구속하여 하나님께로 갈 수 있게 하겠는가.
십자가는 죄를 처리하는데 가장 강력한 길이었다. 십자가 위에서 흘린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가 우리 죄를 영원히 처리하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셨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이루어진 곳이 십자가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완전한,유일한 해결책이다.
2) 무엇이 죄를 억제하는가.
윤리와 도덕과 종교는 일시적으로 죄를 억제하는데 기여해 왔다. 그러나 그 모든 시도들은 죄를 없애지 못할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죄를 억제하지 못하며, 죄의 세력에서 건지지 못한다. 그러나 주님의 보배로운 피는 죄를 억제하고 죄의 세력을 벗어나게 하는데 가장 강한 치료제인 것이다. 십자가의 보배로운 피가 아니었으면 벌써 방탕의 길을 걸어간 사람들이 우리 중에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3) 무엇이 유혹을 이기게 만드는가 .
십자가의 사랑이 유혹을 이기게 만든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유 1:21)”라는 말씀대로 십자가의 사랑은 유혹을 이기게 하는 강력한 힘이다.
4) 환난과 역경을 무엇이 이기게 만들었는가.
십자가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환난과 역경을 이기게 하는데 가장 강한 것이다. 역사 속에서 누가 환난을 가장 많이 겪었는가. 그리스도인들인 것이다. 그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환난과 역경 심지어 순교를 기꺼이 받게 한 것이 무엇이었는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5) 무엇이 죽음의 권세를 이기게 하는가.
죽음은 누구나 두려워하는 것에 속한다. 그러나 사망을 향해서 호령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누구인가. 십자가의 도를 받아들인 사람들인 것이다.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시63:3).
6) 사람을 변화시키는데 무엇이 가장 강하였는가? 가장 많은 죄인들을 변화시킨 것이 무엇인가. 십자가이다. 교회사를 통해서, 또 가까운 한국에서 사람을 변화시키는데 가장 유효한 것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십자가는 사람의 위선을 벗기고 사람으로 가장 정직하고 솔직한 사람, 청결한 사람으로 만들어왔다.
7) 선을 행하게 하는데 무엇이 가장 강하였는가? 십자가는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선을 행하게 하였다. 선교사를 보내고 그들을 위해 희생하고 수고하고 자신을 헌신하게 하는데 가장 유효한 것이 십자가였다.
개미처럼 주님의 영광을 위해 부지런히 일하도록 하고, 나귀는 풀을 뜯고 소는 밭을 간다는 말씀대로 남이냐 일하든 말든 개의치 않고 자기의 일을 소처럼 묵묵히 하도록 만들어온 것이 십자가인 것이다.십자가는 사람을 가장 현실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현실 속에서 주님의 역사를 이루게 만들었으며, 현실 속에서 선을 행하도록 독려하였다. C.S.Lewis 의 <사탄의 편지>에서 마귀가 잘 사용하는데 수단의 하나가 “미래나 과거에 붙잡아 매어둔다”는 전략이다. 곧 현실은 무시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과거나 미래 뿐 아니라 현재를 먹고 산다.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주님의 빛을 비추고 사람을 인도하며, 선을 행한다.
8) 사랑의 실천을 가장 크게 가능하게 한 것이 무엇이었는가? 십자가의 사랑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하게 하였다. 사랑의 실천은 십자가를 따라올 수 없다.
무엇이 사람을 세우고 또 다른 사람을 바른 길로 인도하였는가. 십자가가 그렇게 사람을 만들어왔다. 사랑이야말로 기독교의 신앙의 심장이자 혼이다. 사랑의 실천을 가장 잘 실행한 것이 십자가의 도리를 깨달은 사람이 아니었는가.
9) 무엇이 육신의 안일을 벗어나서 약속의 땅을 밟도록 하는가?
십자가의 복음이 사람을 그렇게 만든다.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은 뽕나무 뿌리를 뽑아 바다에 심기우게 하고 산을 옮기기도 하는 것이다.
힘 있는 인생을 만드는데 십자가만큼 유효한 것은 없다.
4.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 “십자가”
1) 십자가에 죽을 때 우리도 같이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며 주님이 살아날 때 우리도 같이 살아난 것이다. 예수님 죽음 내 죽음, 예수님 부활 내 부활인 것이다.
(갈 2:20)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엡3: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 주님이 마음의 중심을 차지하도록 주도권을 내어드리는 사람은 주님의 인도를 경험하게 된다.
(잠 3: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잠 3: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믿음으로 주님이 자기 앞에 계신 것처럼 생각하고 사는 사람, 마음의 주도권을 주께 내어드리고, 주님이 마음 중심에 계신 것처럼 생각하고 사는 사람은 주의 인도를 경험하며, 주변의 사람들이 과연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심을 보게 될 것이다.
예시) 침례의 의미는 난 죽었고 주님의 새 생명 가운데 살겠다는 공적인 선서와 같은 것이다.
A.W. 토저 박사에 의하면 한 젊은 신자가 “십자가에 못 박힌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느냐”는 질문에 그 성숙한 신자는
첫째,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은 한 방향만 바라보고 있다. 즉 오직 한 방향만을 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한꺼번에 두 가지 방향을 대하려 하고 있다. 그들은 두 마음이다. 그들은 천국에 가기 원하면서 세상을 사랑하고 있다. 그들은 롯의 부인과 같다. 그들은 한 길을 달리고 있으나, 또 다른 것도 바라보고 있다.
둘째,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은 뒤로 후퇴하지 않는다. 십자가는 그에게 끝이다. 커텐은 드리워졌다. 드라마는 끝났다. 그것은 십자가 사건의 종말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은 그의 옛 생활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그것은 영원히 끝난 것이다.
셋째,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은 자신의 계획이 없다. 그는 더 큰 집이나 더 좋은 차를 꿈꾸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생애를 끝낸 것이다. 그의 쇠사슬은 모두 끊어졌고 그 매력도 다 가버렸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이다.
2) 주님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우리는 주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우리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가 있다.
(골1:24)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고전 1:21)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마 16:24)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기의 존재 자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 앞에 자기를 굴복시키는 것이다. 새 새명으로 살되, 주님 중심으로 사는 것이며 자기의 주장과 뜻을 꺾는 것이다. 그것이 자기 부인하는 것이다. 자기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❶ 자기 부인 – 육신의 타락한 본성을 하나님 말씀에 굴복시키는 것
❷ 자기 십자가 –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것
❸ 좇을 것이니라 – 전심 전력하여 끊임없이 계속해서 좇아가야 할 것을 의미한다.
기독교의 특징-날마다 죽어야 하는 종교이다) 신앙생활은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적인 즐거움을 누린다. 옛 아담 안에서의 기쁨은 나이트 클럽에서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나이트 클럽에서 사람들은 음악이 흐르는 중에 짜릿한 맛을 만끽한다. 영적인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서는 육신을 죽이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과해야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주님이 당신과 함께 계실 것이다....... 무디는 주전자와 두개의 유리 잔을 사용하곤 하였다. 하나의 유리잔에는 물이 가득 들어있었고 다른 유리 잔은 비어있었다. 이미 물로 가득한 잔에는 더이상 물이 들어가지 않는다. 세상의 것으로 채워지면 주님의 신령한 것이 들어갈 수 없다. 세상의 선생들은 지식을 가르치지만 하나님의 영은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신다.’
(부록) 나는 십자가에 못 박혔는가?
주님을 따르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구세군을 창설한 윌리엄부스는 청년 때도 예수를 믿었지만
온전히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지는 못하였습니다. 하루는 윌리엄 부스가 꿈을 꾸는데, 갈보리 언덕 같은 산으로 올라가는 자신을 보았습니다.
그곳에는 십자가가 서 있었고 거기에 한 사람이 매달려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아, 예수님이시구나!’ 생각하는 순간, 한 청년이 오더니 십자가에 사닥다리를 놓고 올라가
이미 못 박혀 있는 예수님의 손과 발에 다시 큰 못을 박는 것입니다.
이것을 본 윌리엄부스는 견디지 못하고 달려가 소리쳤습니다.
“야, 이놈아! 왜 예수님께 또 못을 박는 거야?
그만 두지 못해! 어서 내려 와, 이 나쁜 놈아! 도대체 너는 누구냐”
그때 그 청년이 망치질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I am you!(나는 너다!).” “너는 누구냐(Who are you)?” “나는 너다(I am you).”
깜짝 놀라서 그 청년을 자세히 보니까 진짜 바로 자기인 것입니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기절할 일이었습니다.
윌리엄부스는 삶을 돌이켜보니 수많은 죄를 지으며 살아온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모르는 은밀한 죄도 생각이 납니다. "아, 내가 정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또 못 박았구나." 부스는 그 자리에서 십자가의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며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 날 이후 윌리엄부스는 삶이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과연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고
있는 일이 없는지 우리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십자가위로 오르십니다. 입술로만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우리의 삶의 모습으로 십자가 위에 오르신 그분을 못 박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힌다는 뜻입니다.
나 자신이 십자가에 못 힌다는 뜻은 구체적으로 어떤 삶인가요?
첫째: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발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발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긴 쇠못은 예수님 발의 살과 피와 뼈를 뚫고 들어갔습니다.
따라서 나의 발도 십자가에 못박혀야 합니다.
나의 발이 낡고 부패한 죄악의 땅을 밟고 다닐 수는 없습니다.
둘째: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손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두 손은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죄와 허물로 더렵혀진 나의 두 손도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합니다.
그리고 그 손으로 남을 축복하고 도와주며 하나님의 일에 열심을 품어야 합니다.
그래서 가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증거로 손바닥의 못 자국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셋째: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귀를 십자가에 못박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죄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유혹의 소리, 형제를 이간시키는 소리,
하나님을 대적하는 소리,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의 소리 들이 넘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귀를 십자가에 못 박아서 오직 예수님의 소리만 들어야 합니다.
넷째: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눈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많은 것들이 우리의 눈을 통하여 갖가지 욕정을 자극 합니다.
자신의 눈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은 도색잡지의 유혹을 넘어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영적 추수에 관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다섯째: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입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우리는 입으로 형제를 정죄하고 심지어 살인까지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 속에서도 결코 누구를 정죄하지 않습니다.
또 한마디 불평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혀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면, 온갖 고난 속에서도 묵묵히
주님의 뜻만을 나타내려고 노력할 것 입니다.
여섯째: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인간의 마음은 이기적이고 탐욕적이고 사악합니다.
인간의 마음은 자기 자랑적이고 교만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속적인 마음을 십자가에 못박아서 예수님의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십자가는 구원을 상징합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과의 화평을 상징합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의 사랑을 상징합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에게 있어서 실제적인 고난이였으며 실제적인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참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실제적인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참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그 예수님을 좇아가야만 합니다.
나는 십자가에 못박혔는가?
나는 발 손, 귀, 눈, 입, 마음 중에 아직도 십자가에 못박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
나는 탐심과 욕정이 십자가에 못박혀서도 아직까지 몸부림치고 있지는 않은가?
나의 모습은 어디까지인가 살펴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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