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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부 성경공부

진화론의 성립

by 언약의 지팡이 2020.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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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의 성립

 

 근대 진화론이 탄생하기까지는 꼭 필요한 산파가 둘 있었습니다.

 첫 번째 산파는 생물의 상호 연관관계를 밝힌 분류학이고 또 다른 하나는 지구의 증인인 화석을 찾아낸 화석학입니다.

 18세기에 이르러 프랑스의 낡은 전체주의를 뒤흔든 프랑스혁명과 영국의 산업혁명 이후 진화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진 두 사람이 라마르크(1744-1829)와 퀴비에(1769-1832)입니다. 프랑스 혁명 이후에 파리는 건물 신축 작업이 활발했고, 대부분 석조건축물을 짓는데 많은 돌이 필요했으며 이에 필요한 돌을 이곳저곳에서 파내다 여러 지층에서 많은 화석이 발견되었습니다.

 해부학에 능한 자연사 박물관의 교수인 퀴비에는 화석에 깊은 관심을 갖고 화석을 분류하고 화석의 뼈를 맞추어 고생물의 형체를 추정하는 작업을 착수했고, 이렇게 해서 퀴비에는 고생물학 분야의 창시자가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는 고생물의 모습이 지금 있는 동물의 모습과 다른 부분들을 발견하였고 수많은 의문 속에 파묻혔습니다.

이때 프랑스 혁명 당시 파리에서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루소의 영향으로 생물학을 연구하여 「계통수 사다리」를 완성했던 라마르크에게 프랑스 혁명사상이 큰 영향을 주어 1809년 <동물철학>에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이렇게 변하듯이 지구의 상태도 서서히 변해왔고 이에 따라 생물도 진화해온 것이 확실하다. 그리고 모든 생물이 한꺼번에 만들어졌을 리가 없다. 자연의 시초는 가장 간단한 생물이었고 이것이 점점 발전하고 변화해서 더 복잡한 고등동물이 된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과 많은 추리 끝에 어떤 기관을 많이 쓰면 그 기관은 점점 발달하고 전혀 쓰지 않으면 점점 쇠퇴한다. 이러한 변화가 대를 이어 계속해서 쌓이면 종의 변화를 일으킨다. 생물의 몸의 모양과 기관 그리고 성질은 그 생물의 조상이 환경의 변화를 겪었고 대를 이어오면서 생활양식이 변화를 가져오도록 했다.”는 학설인 용불용설을 세웠습니다.

 퀴비에는 라마르크가 주장한 진화론을 반대하는 자신의 입장을 유지하면서 화석연구에 드러난 대답을 찾기에 몰두하고 천체지변설이란 새로운 이론을 내세웠습니다. 라폴레옹의 지지를 받고 있는 퀴비에의 세력에 의해 용불용설을 발표한 라마르크는 외롭고 불행한 시절을 보내다가 1829년 소경이 되어 버린 채 죽고 말았습니다.

 퀴비에는 자신이 조사한 화석들은 이집트나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전설로 내려오는 갑자기 몰아닥친 천재지변에 의해 대부분 멸종했고, 살아남은 소수 생물에 의해 번식해서 번성한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퀴비에의 천체지변설을 많은 사람들은 환호했습니다. 즉, 당시의 기독교인들은 진화론을 대항할 근거를 세워주고 창조론을 지켜줄 메시아처럼 환영했습니다. 또한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퀴비에 제자들은 멸종할 때마다 하나님이 다시 새롭게 창조했다는 주장을 펴는 등 혼란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퀴비에의 급하고 강직한 성격으로 다른 주장을 일축시켜 천재지변설이 유력시 되었으나 그가 1832년에 죽자 오히려 화석이 라마르크가 주장한 진화를 뒷받침해

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때 "종의 기원"으로 유명한 다윈(Charles Darwin : 1809-1882)은 1809년 2월 12일 잉글랜드 북서부 시루즈베리에서 영국의 부유한 의사 집안에 태어났습니다.

 1825년 에딘버러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다가 그만두고, 1828년 케임브리지대학 신학부에 입학하여 1831년 학위를 받았으나 신학보다는 곤충 채집이나 박물학에 더 흥미를 느끼던 그는 1831년 22세의 젊은 시절에 영국 해군성의 측량선인 비글호에 무보수 박물학자로 승선하여 5년 동안 남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남아프리카를 답사하면서 미지의 자연을 접하고 정확한 눈으로 많은 사실을 관찰하였습니다.

 항해 중 다윈은 1830년에 발표되어 당시 새로 출판된 지질학자 라이엘(Charles Lyell : 1797-1875)의 <지질학 원리>를 읽고 크게 감명을 받았습니다.

근대 지질학의 원조로 알려진 제임스 허튼(1726-1797)은 1785년 지구에 관한 이론은 발표하여 지구의 표면은 침식, 퇴적의 과정이 반복되는 순환하는 지구를 가정하였다.

라이엘(1779-1875)은 ‘현재는 과거의 열쇠다’라는 생각을 더욱 발전시켜 오늘날과 같은 동일과정설이라는 이론을 만들어 냈다. 라이엘이 쓴 지질학 원론은 다윈의 진화론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라이엘 이전에는 과거에는 지금과 다른 대 격변이 있었다는 퀴비에의 격변설이 주로 받아들여졌다.

 

 지표의 모양은 당시 지식층의 생각과는 달리 아주 긴 시간 동안 여러 번의 지질시대가 바뀌어 갔고 그 시대마다 다른 생물이 생겨났다가 없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오랜 기간에 걸쳐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의 부제는 '지구 표면의 과거의 변화를, 현재도 활동하고 있는 여러 원인들로 설명하려는 시도' 라고 되어 있습니다.

지 질 시 대 연 대 표

년대

(백만)

고생물의 변화

환경과 지각변동

제4기

홀 로 세

플라이스토세

.01

2

인류 문화 출현

타르 핏트 동물

최근 빙기가 끝남

제3기

플라이오 세

마 이 오 세

올 리 고 세

에 오 세

팔 레 오 세

12

26

37

53

65

올드바이 죠지 화석

초원 전개

거대한 포유류

모든 포유류 등장

작은 원시 포유류

서늘한 기후, 산맥형성

산안드레아스 단층

알프스 산맥의 형성

인도가 아시아와 충돌

로키산맥 형성

백 악 기

쥬 라 기

트 라 이 아 스 기

136

190

225

공룡과 많은 생명체 사멸

식물, 초기 포유류, 시조새

공룡시대 전개

온화한 기후

지중해 형성, 대륙이 갈라짐

건조 기후

페 름 기

석탄기(펜실베니아기)

미 시 시 피 기

데 본 기

실 루 리 아 기

오 도 비 스 기

캠 브 리 아 기

280

320

335

395

430

500

570

많은 생물들이 전멸

파충류, 석탄 숲

산호초, 양서류 출현

폐어, 육상 식물

절족 동물이 바다를 이탈

초기 물고기

해서 무척추 동물 번성

팡게아 형성

남반구 빙하

에팔레치아 산맥 형성

원시 대서양이 좁아짐

 

 

해양식물 산소 방출

 

 

 

 

 

2,500

해서 동물과 연체 생물 출현

해조류

유독한 대기

빙하의 흔적

다이아몬드 광상 형성

 

 

 

 

3,400

3,800

 

 

4,600

가장 오래된 생명체

 

가장 오래된 암석

유독 대기층 형성

지각 형성

태양계와 지구 형성

 

 비글호의 항해를 통해 그는 생물의 여러 가지 종은 원래 신이 창조한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여건에 따라 변화하여 새로운 종이 생기고 또 없어지기도 한다는 진화설을 확고하게 믿게 되었습니다.

 특히 갈라파고스섬에서의 경험이 그에게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해 준 것 같습니다. 적도 근처의 이 섬들은 육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며 섬들 사이의 거리는 아주 가까운데도 불구하고, 이 섬들에는 같은 종의 동물이 조금씩 서로 다른 모습을 가진 여러 변종으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다윈은 현재 '다윈 핀치'라고 불리는 새의 부리가 뭉툭한 것에서부터 아주 날카로운 것까지 4가지를 그림으로 그려놓고 뭉툭한 부리를 가진 핀치는 주로 큰 낱알을 주식으로 하고 제일 날카로운 부리의 핀치는 작은 벌레를 주식으로 먹고산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이 네 가지 핀치류가 원래는 한 가지 핀치로부터 바뀌어 생겨난 것임을 그는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다윈은 이후 귀국하여 1838년 맬더스의 "인구론(1798)"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다윈 자신의 말에 의하면 '흥미삼아' 읽은 이 책의 내용이 다윈이 직면하고 있던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했다. 이를 통해 자연계의 생존 경쟁을 착안하였으며, 그로부터 적자생존이나 자연선택의 원리를 결론으로 얻었습니다. 인간사회의 치열해져 가는 생존경쟁에서 이기고 환경에 잘 적응하는 사람만이 살아남는다는 맬서스의 이야기는 다윈으로 하여금 '경쟁'의 중요성을 인식하도록 해 주었습니다. 즉, 생물은 주어진 환경 속에서 생존 경쟁을 벌이게 마련이고, 거기 적당한 자는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종류는 도태 당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곧, 이 같은 '생존경쟁'이 어떤 종의 여러 개체 중에서 환경에 잘 적응하는 성질을 가진 것만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하는 선택의 수단으로 작용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나면 그 같은 성질을 가진 개체들만이 살아남아서 종의 성질이 그 같은 방향으로 변화하도록 '선택'할 것입니다.

 또한 다윈은 『인구론』에서 이야기하는 인간이라는 하나의 종 안에서의 이 같은 '경쟁'을 같은 지역 내의 여러 종들 간의 경쟁으로 확장해서, 적응의 대상이 되는 환경에 한 종과 경쟁하고 있는 주위의 다른 종들도 포함되도록 했습니다. 기후, 풍토 등의 물리적 환경이 똑같은 갈라파고스군도의 서로 다른 섬들에서의 각각 다른 동식물 분포는 이 같은 종들 간의 경쟁에 의해 설명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이 진화의 메커니즘이라는 다윈의 이론의 핵심이 형성되었습니다

 1859년 다윈은 드디어 "종의 기원"을 출판하였는데, 초판 1250부는 그날 매진되었고 후에 6판까지 수정 출판하였습니다. 이러한 성공의 원인은 그의 학설이 구체적인 실례와 직접적인 관찰에서 얻은 성과에 토대를 두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진화론은 다윈 혼자만의 업적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아일랜드의 생물학자인 월레스(Alfred R. Wallace : 1823-1913)도 다윈과 거의 똑같은 결론을 얻었고 진화론은 두 사람의 독자적인 동시 발견 업적인 것입니다.

 다윈의 저서로 인하여 격렬한 대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진화론은 종교적, 사상적, 정치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전 세계에 미쳤으며, 그 영향은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진화론의 7가지 기본 가정을 제시하였습니다.

① 생물은 무생물에서 자연 발생하였다.

② 생명의 자연 발생은 한번만 일어났다.

③ 바이러스, 박테리아, 식물과 동물은 상호 연관되어 있다.

④ 원생동물에서 무척추동물이 나왔다.

⑤ 무척추동물은 상호 연관되어 있다.

⑥ 무척추동물에서 척추동물이 나왔다.

⑦ 척추동물이 양서류로, 양서류는 파충류로, 파충류는 조류나 포유류로 진화되었다.

 그리고 다윈은 이 기본가정을 토대로 진화가 일어나는 요인으로 돌연변이와 자연도태를 제안하였습니다.

 다윈이 그 종의 기원에서 세운 학설로 그의 진화론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자연선택설은 우리말로는 자연도태라는 말로 오랫동안 쓰여 왔습니다. 그 내용은 생물이 자라서 자손을 남기는 개체보다도, 훨씬 많은 알이나 종자나 새끼가 태어나고 그 생물들은 변이가 있고, 그 변이는 전부는 아니지만 자식에게 유전한다는 것입니다. 즉, 많이 태어난 새끼는 모두 완전히 똑같지는 않고 조금씩 타고난 변이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많이 태어난 개체 중에서 아주 적은 수밖에 자라지 못하기 때문에 격심한 생존경쟁이 일어나고 각각의 환경에서의 생활에 보다 더 적합한 변이를 가진 개체일수록 그 생존경쟁의 승리자가 되어 자연을 선택하고 자손을 남기기 쉽다는 이론으로 이것을 자연선택설이라 합니다.

 자연선택의 모델로 영국 맨체스터 지방의 나방을 들고 있는데 내용을 살펴보면 1845년 영국의 맨체스터가 공업화하면서 공해를 일으키기 전에는 회색가지나방의 대부분은 흰색나방이고 검은색 나방은 소수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러나 맨체스터가 공업화된 이후 검은색 나방의 수는 점차 증가하고 흰색 나방의 수는 감소하는 것을 관찰하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50년 후 이 지방의 대부분의 나방은 검은색 나방이었고, 흰색 나방은 소수에 지니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공업암화 전에는 밝은색 지의류가 가로수에 자생하여 나무껍질이 밝은 색깔을 띠었는데, 여기에 붙어살던 흰색 나방은 몸 빛깔이 나무껍질의 색과 비슷하므로 새의 눈에 발견되지 않았지만, 검은색의 나방은 쉽게 새의 눈에 띠어 잡아먹힘으로써 검은색나방의 수는 적고 흰색 나방의 수는 많았던 반면에 공업암화 이후에는 공장의 심한 매연 따위로 지의류가 죽어 없어지면서부터 나무의 검은 색이 노출되자, 검은색 나방은 새의 눈에 쉽게 발견되지 않게 되고 희색 나방이 오히려 더 잘 잡아먹혀 검은색 나방의 수는 증가하고 흰색 나방의 수는 감소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흰색과 검은색의 나방의 빈도가 공업암화를 전후하여 엇갈리게 변하는 것은 새로운 환경에 의하여 검은색 나방이 자연선택 되었기 때문이었고 근래에 맨체스터 부근의 공해문제가 해결됨에 따라 흰색 나방의 빈도가 다시 높아지고 있습니다. 즉, 가로수 껍질의 색깔이 검은색일 때는 검은색 나방이 선택되었고, 밝은색 일 때는 흰색 나방이 선택되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유전학적 연구에 의하면 나방의 색깔은 멘델의 법칙에 따라서 나타나는 우열의 대립인자라고 합니다. 즉, 검은색 나방과 흰색 나방의 몸 빛깔은 서로 우열의 대립이자라는 것입니다. 검은색은 인자(C)형 CC Cc에 의해서 나타나는 우성의 형질이고 흰색은 인자(c)형 cc에 의해서 나타나는 열성의 형질입니다.

 이 경우, 검은색 나방의 형질이 공업암화 이전에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따라 이 자연선택의 결과는 진화로 나타날 수도 있고, 혹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검은색 나방이 흰색 나방의 돌연변이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라면, 공업암화에 의해서 검은색 나방이 선택된 것은 진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검은색 나방이 흰색 나방의 돌연변이종이 아니고 흰색 나방과 정상적인 대립인자의 관계라면, 비록 검은색 나방이 환경조건에 의해서 선택되었다 할지라도 그러한 선택의 결과로 진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은 대단히 희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갈라파고스의 핀치새의 경우를 보면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남아메리카의 갈라파고스 제도에 도착했을 때, 그는 거기에 흩어져 살고 있던 핀치새의 다양한 모양을 관찰하고 매우 흥미를 느껴 그의 저서 '종의 기원'에 기술해 두었습니다. 그 후 진화론자들은 핀치새의 경우를 여러 종류의 핀치새가 한 종류의 공동 조상으로부터 자연선택 및 격리에 의하여 진화한 예로 풀이했습니다. 14종의 핀치새 중 8종은 나무에서 서식하면서 주로 곤충을 먹고 살고 6종은 땅 위에 서식하면서 주로 씨를 먹고 삽니다. 형태적으로 가장 다양한 구조는 발과 부리입니다. 이러한 관찰을 토대로 서식지에 대한 경쟁과 먹이에 대한 경쟁에 의해서 조상벌 되는 핀치새가 다양하게 진화되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갈라파고스 제도가 약 200만 년 전 화산 분출에 의해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섬에 사는 모든 육상 동물은 다른 육지로부터 이주해 왔어야만 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리고 핀치새의 조상새는 섬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지만 약 950km 떨어진 에콰도르로부터 이주해 왔을 것이라고 추정되었습니다.

 

 특별히 핀치새는 잘 날지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먼 거리를 자신의 힘으로 날아왔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심한 태풍에 밀려 이 섬에 떨어짐으로써 이주하게 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비록 공동 조상새가 발견된 경우도 없고 종간의 변화가 직접 관찰된 경우도 없지만, 현존하는 핀치새의 차이점에 근거하여 조상새가 이주한 다음 20-50km 떨어진 섬과 섬 사이의 지리적 및 생식적 격리에 의하여 서로 다른 방향으로 진화됨으로써 14종의 핀치새가 되었을 것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950km의 거리를 태풍에 밀렸든지 어쨌든지 이동했을 핀치새가 50km 떨어진 거리는 이동을 할 수 없었을까요?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돌연변이에 의하여 유기체를 진보시키려는 것은 스위스제 시계를 떨어뜨리고 기어를 굽혀 더 나은 시계를 얻으려는 것과 같다. 무작위의 돌연변이에 의하여 생물이 진화될 가능성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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