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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부 성경공부

참된 선생이신 예수님

by 언약의 지팡이 2020.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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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5) "예수께서 앉으사 열 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13:7)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

(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선지자들은 자기 생각이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을 깨우쳤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을 입고 친히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그리고 33년 동안 인간과 동일한 삶을 사셨고, 공생애 기간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해 주셨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떠난 후 성령님을 보내 주실 것을 약속하셨고, 그 약속대로 오순절에 성령님이 구원받은 사람들 속에 강림하심으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는 머리되신 주님께로부터 가르침을 받습니다. 그 방법은 바로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주님께로부터 받은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가르치는 일을 위해 교회 안에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을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도인이나 교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가르치시는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또한 가르침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럴 때에 그 말씀 속에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우리의 마음과 생활을 변화시키시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게 하십니다(살전 2:13). 그 가르침 안에 거하는 것이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며, 그 가르침 대로 살아가는 삶이 바로 참된 신앙생활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본문: 1:35~42

(1:35-42) "(35)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36) 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37)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거늘(38) 예수께서 돌이켜 그 좇는 것을 보시고 물어 가라사대 무엇을 구하느냐 가로되 랍비여 어디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39)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 보라 그러므로 저희가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제십시쯤 되었더라(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는 두 사람 중에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35~36)예수님을 바라보고 바로보게 하는 다리 역할을 한 세례 요한

(39)삶의 뒷면도 진실하다는 것을 보여주신 예수님 

(41~42)믿음을 드러내며 실천할 수 있도록 변화를 일으키신 예수님

(42)현재보다 장차 큰 일꾼으로 성장된 제자의 모습을 보신 예수님

 

 예수님을 바라보고 바로보게 하는 다리 역할을 한 세례 요한

35~36: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36) 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예수님에 대해서 바로볼 수 있도록 정확하게 가리키고 가르치자.

예수님은 각 사람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오신 희생양이시고 어린양이시다(1:29~36). 많은 사람을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는 있지만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자신의 구세주로 받아들이지(17:3) 못함으로 주님 오실 때 밖으로 내어 쫓김을 당하게 된다(25:30).

 

우리가 함께하고 우리에게서 가르침을 받고 있는 그들이 주님께로부터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하자(12:14~17, 4:1, 2:1). 단지 입술로 고백하고 주님을 자신의 삶에 드러나지 않는 위선적인 삶에 머물게 하지 말자(1:16). 정확히 하나님께 속한 사람으로 굽이 갈라지고 새김질을 할 수 있게 하자.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주님의 피를 받아들이고, 몸된 교회 안에 머물며 주님께로부터 난 자인 형제를 사랑하고, 주님의 계명을 준행한다(요일 2:3~6, 19, 3:10, 19, 24, 4:7).

 

우리는 우리가 가르치는 대상(성도, 학생)이 반드시 주님을 그리스도요, 메시야로 만나게 해야 한다(1:38, 41, 16:16, 11:27, 20:28). 그리스도와 개인적으로 대면하게 하자. 성경과 개인적으로 직면하게 하자. 자신의 영원한 운명을 바라보고 그리스도를 바로보게 하자(3:1, 12:2, 25:15, 42:5, 40:31).

 

우리는 학생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세례 요한은 자신을 소리라고 했고(1:23) 신랑의 친구로 신랑이 신부를 취하는 것을 보고서 기뻐한다고 밝히며 자신은 쇠하고 예수님은 흥하여야 한다고 비교와 시기심을 조장하는 분위기와 상황 속에 분명히 드러냈다(3:29~30). 뿐만 아니라 복음의 교사들은 자신들에게 주목하지 않기를 강조하고(10:33, 14:15, 고전 15:3) 자신들은 그리스도의 사역자이고 종이라고 힘을 주어 얘기했다(고전 1:23~24, 3:5~9, 고후 4:5).

 

특히 바울 사도는 자신이 고린도 성도들을 그리스도께 중매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사역자나 교사의 참 모습이 어떠해야 할지 알려 준다(고후 11:2). 바울 사도가 강조했듯이 주님의 몸이며 신부인 교회는(19:7) 완성되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를 세우기 위한 우리의 마음과 태도는 성도를 살피기 위해 부모와 같은 사랑이어야 한다(살전 2:11, 7). 성도의 기쁨과 성장을 돕는자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후 1:24, 20:20, 31). 당연히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분은 주님이시다(16:18~19, 4:16, 2:19). 그러나 그 교회를 세우는 일에 우리가 동참되어 함께하는 영광을 누리고 있다(1:24, 딤후 1:8, 2:10).

 

     #. 가장 위대한 스승

윈스턴 처칠이 세기의 위인으로 불리며 인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 런던의 한 신문이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처칠을 가르친 교사들을 조사해서 위인을 만든 스승들이란 제목으로 기사화한 일이 있었다. 이 신문을 읽고 처칠은 다음과 같은 메모를 신문사에 보냈다고 한다.

"귀 신문의 조사에서 나의 가장 중요한 스승 한 명이 빠졌습니다. 그분은 바로 나의 어머니입니다."

어머니보다 더 많은 영향을 주는 스승은 없을 것이다. 지식의 전달보다도 사랑을 전달하여 인간을 만드는 위대한 스승이 어머니다. 어머니날을 앞둔 주말에 레이건 대통령은 특집으로 편성된 라디오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 2백년 동안 미국의 전통적인 가치를 후세에 전달한 공로자를 말한다면 학교 교사보다도 먼저 미국의 어머니들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나 자신만 해도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나의 어머니 넬리 레이건이었다고 서슴치 않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삶의 뒷면도 진실하다는 것을 보여주신 예수님 

39: "와 보라 그러므로 저희가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매"

 

자신의 어두운 면까지 볼 수 있도록 와보라고 외치자.

살아있는 교훈은 가르치는 자의 삶이 뒷받침되었을 때 배우는 이들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다. 자신의 입술과 삶이 일치되는 삶은 그리스도인 교사에게 선택사항이 아니라 반드시! ! 물러나서는 안 될 필수요소이다(딤전 4:16, 20:28, 2:21, 살전 2:10, 7:24~27). 그래서 어쩌면 교사에게 더 많은 심판이 있다고 하셨는지도 모른다(3:1, 23:8, 10, 12:48). 

 

빛과 어두움이 명확하게 대비될 때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게 된다. 우리의 허물, 숨기고 싶은 것을 감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빛으로 치유되고(5:13) 점점 성장하고 있는 과정을 보여 주어야 한다(139:23~24, 19:12~13, 90:8~9). 어디에서나 같은 모습의 진실함은 우리에게서 배우는 사람을 감동시키고 그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다. 그리고 교사인 우리도 성장하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에 서로의 부족한 점과 약점을 인정하고 함께 성장해 가자고 손을 내밀 수 있다(딤전 4:6~15).

 

넘어지며 일어서고 있는 아픔과 고통이 포함된 성장의 흔적들을 보여주자하나님께서는 성경에 흠없이 완벽한 장면만을 담은 것이 아니라 흔들리고 넘어지며 감추고 싶은 것까지도 다 기록하고 있다(아브라함의 실패, 야곱의 실패, 다윗의 실패, 베드로의 실패, 마가의 실패 등).

 

그러므로 입술과 삶을 일치되게 하자.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의 가르침은 옳았으나 단순히 말뿐이었고, 그 행위는 상반되었기에 주님께선 그들을 본받지 말라고 하셨다(23:3, 1:16, 고전 4:19~20, 고후 6:3~10, 13:7, 17). 우리는 우리에게서 배우는 이에게 내 삶의 모습도 본받아야 한다고 들리지는 않지만 큰 소리로 담대하게 외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살전 2:13, 3:17, 4:9, 고전 11:1)?

 

더 진보를 이루자, 그리고 주어진 상황과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자.

매일 매일이 교사로서 성장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그대로 멈추었거나 심지어 뒤로 물러나며 침륜에 빠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쉬움과 두려움이 많다. 그러기에 모든 것의 근원이신 주님께 구하자(36:9, 19:1, 1:5, 15:7~8). 

 

그래서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성령의 능력으로(8:1~2) 복음의 진보(1:12), 믿음의 진보(1:28), 자신의 진보(딤전 4:15)를 이루자. 제자가 선생보다 뛰어나기는 어렵다지만(6:40) 주님 안에서 주님이 계시기에 우리에게서 배우는 제자들이 우리보다 더 명철해 질 수 있다(119:99). 그러하기에 우리가 점점 더 성경에서 말하는 스승다운 스승이 되어간다면(6:40), 제자들은 성장하게 되고 또 우리를 넘어선 신실한 일꾼들이 일어남으로 주님의 몸된 교회는 더 넓은 지경으로 확대되고 큰 진보를 이루어 주님께 영광다운 영광을 돌려드리게 될 것이다(대상 9:33, 1:53, 10:10, 3:8, 1:32~33).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허락하신 하루 하루를 감사함으로 받고 더 치열하게 최선의 삶을 살아가자. 주님이 베푸신 상황, 여건, 처지, 입장들이 나의 분복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열심히 살자(9:7, 3:22, 11~13, 살전 4:11, 살후 3:10~12, 4:28, 18:9)

 

     #. 가르침을 위한 묵상

(6:40)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케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니라"

이 구절에서 주 예수님은 열두 제자에게, 그들이 다른 이들을 훈련시키러 나갈 때 그들의 제자들이 영적인 삶에서 그들 자신이 이룬 수준보다 더 큰 진보를 이룰 것으로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켰습니다. 다시 말해서, 다른 이들에 대한 우리의 영향력은 우리 자신의 현재 모습에 의해 제한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O. L. 클라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가르칠 수 없으며, 당신이 가지 않는 곳으로 인도할 수 없다."

주님은 이 교훈을 보강하시기 위해 티와 들보의 비유를 덧붙이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탈곡장 옆을 지나가는데 갑자기 강풍이 불어서 눈에 티가 들어갔습니다. 그는 눈을 비비고 눈꺼풀을 위아래로 잡아 당기고, 친구들의 그럴듯한 얘기를 들으면서 눈에 티를 제거하려 애썼습니다. 그 때 제가 눈에 들보가 박힌 채 그에게로 다가갔습니다. "여보게 친구, 내가 좀 그 티를 빼보겠네." 그러자 그는 티가 들어가지 않은 한 쪽 눈으로 힐끗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자네는 자네 눈에 박힌 들보나 먼저 빼야 된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물론입니다! 저의 자신이 엄청난 죄로 휘청거리면서 자그마한 죄와 싸우는 사람을 도와줄 수는 없습니다. 저의 자신이 그것을 순종하지 않으면서 다른 이에게 성경의 어떤 명백한 명령을 순종하라고 강권할 수는 없습니다. 저의 삶에 어떤 부분이 실패할 경우 그 부분에 있어서는 저의 입이 닫히게 마련입니다.

저의 제자가 완전해졌을 때, 즉 제가 그를 훈련시키기를 끝마쳤을 때, 저는 그가 저의 영적인 수준보다 조금이라도 높아질 것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가 저의 높이만큼 진보할 수는 있지만, 제가 그를 그 이상으로 이끌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 모든 사실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주의해야 함을 새롭게 상기시켜줍니다. 우리의 사역은 인격의 사역이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면입니다. 우리는 똑똑하고 언변이 좋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 나태하고 불순종하는 오점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훈련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경우가 될 것입니다.

 

교사로서 가르침을 위한 내용을 철저히 준비하고, 방법도 점점 다듬어 가자.

가르침의 과정은 참으로 고되고 외로우며 힘이드는 어려운 일로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마라톤과 같다. 그러므로 꾸준히 먼저 자신을 가르친 후 다른 사람을 가르치자(살전 4:1, 10). 그리고 가르침을 위해 필요한 기술들도 익혀야 한다(34:11, 10:21, 50:4, 딤후 2:24~25). 

 

#. 7가지 교육의 법칙

교육이란 경험의 전달인 것이다. 교육이란 한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그림을 다른 사람의 마음에 그리는 것이다.

-. 두 가지 인적 요소: 교사, 학생

-. 두 가지 지적 요소: 공통 언어 혹은 커뮤니케이션 매체, 커뮤니케이션의 대상인 진리 혹은 교훈

-. 세 가지 기능적 행위 또는 과정: 교수의 기능, 학습의 기능, 그리고 결과를 점검하고 확고하게 하는 마지막 혹은 마무리 과정

 

     교사의 법칙교사는 가르칠 수업 내용 또는 진리를 알아야 한다.

"교사는 가르치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교사는 자기가 아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 가르치려고 하는 수업 내용을 철저하고 익숙하게 알라. 완전한 지식과 명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가르치라.

 

     학생의 법칙: 학생은 수업에 흥미를 가지고 참가해야 한다.

"학생은 배울 내용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참여해야 한다."

-. 수업 내용에 대해 학생들이 관심과 흥미를 갖게 하고 지속시켜라. 주의집중이 안 된 상태에서 가르쳐려고 하지 말라.

 

     언어의 법칙: 교사와 학생 사이의 매체로 사용되는 언어는 양자에게 공통적인 것이어야 한다.

"가르치는 데 사용되는 언어는 교사와 학생에게 공통적인 것이어야 한다."

-. 학생들과 교사 자신이 똑같이 이해할 수 있는 말을 하라. 서로에게 명확하고 생생한 언어를 사용하라.

 

     수업의 법칙: 숙달되어야 하는 수업 내용은 학생이 이미 알고 있는 지식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아는 것으로 모르는 것이 설명되어야 한다.

"새로 배워야 할 진리는 이미 아는 진리를 통하여 배워진다."

-. 주제에 관해 학생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과 학생이 직접 체험한 것에서 시작하라. 그 다음 단순하고 쉽고 자연스러운 단계를 통해 새로운 내용으로 들어감으로써, 아는 것이 모르는 것을 설명하도록 하라.

 

     가르치는 과정의 법칙(교수의 법칙): 가르침은 학생의 지성을 일깨우고 사용하도록 하여 원하는 사상을 파악하거나 혹은 원하는 기술을 숙달하게 해야 한다.

"학생 스스로 활동하도록 격려하며 이끌라. 일반적으로 학생이 스스로 알 수 있는 것을 말해 주지 말라"

-. 학생들이 머리를 쓰도록 자극하라. 가능한 한 설명해 주기 전에 생각하게 하여, 학생이 발견자요, 예견자의 태도를 갖게 하라.

 

     배우는 과정의 법칙(학습의 법칙): 배움은 새로운 개념이나 진리를 자신의 머리로 이해하는 것, 혹은 새로운 예술 혹은 기술을 습관으로 만드는 것이다.

"학생은 배워야 할 진리를 자신의 머리 속에 재생산해야 한다."

-. 학생으로 하여금 그가 배우는 수업 내용을 머리 속에 재생산하게 하라. 다양한 상태와 응용을 생각하여 자기 자신의 말로 표현할 수 있게 하라

-. "설명할 수 있을 때까지, 말할 수 있을 때까지"

-. Input 된 것이 output 되어야 학습이 이루어 진 것이다.

 

     복습과 적용의 법칙: 이루어진 가르침에 대한 점검과 증명(마무리와 강화 과정)은 가르쳐진 내용, 즉 전달된 지식, 사상 및 기술을 다시 살펴보고, 다시 생각하고, 다시 알고, 다시 생산하는 것이어야 한다.

"가르치는 일의 완성과 시험과 확인은 복습과 적용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 복습, 복습, 복습하라. 이전 것을 재생산하여, 새로운 생각으로 그 인상을 깊게 하고, 추가적인 의미와 연결시키고, 새로운 적용 방안을 찾고, 그릇된 견해가 있으면 바로잡고, 바른 것을 완전케 하라.

 

     #. 잃어버린 고리: 반복, 반복, 반복 / 복습, 복습, 복습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이루는 것이 우리의 기쁨이다. 그것을 얻기 위한 고리가 있는데 그 고리를 우리는 잃어버리지 않았는지 생각이 든다. 잃어버린 고리가 무엇일까? 현재의 나와 내가 원하는 목표에 있는 나의 사이를 연결할 수 있는 고리가 있어야 한다. 그 고리만 찾는다면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했던 인생으로 주님의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 고리가 무엇일까? 그것은 반복, 반복, 반복이다.

 

자신의 믿음을 드러내며 실천할 수 있도록 변화를 일으키신 예수님 

41~42: "(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자신의 믿음을 드러내고 행동할 수 있게 변화를 이끌어내라.

가르침은 배운 것이 태도와 자세, 삶과 인격, 실천으로 채색될 때 아름답게 완성된다. 이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이고 바람이다. 주님의 사랑을 입은 제자들은 또 다른 그리스도로 살았다고 할 수 있다(13:35, 15:8). 사도들은 성도가 그리스도인으로 일컬어지고(11:26), 진리 안에 섰을 때 안심하며(살전 3:8) 진리 안에서 행한다고 들을 때 기뻐했다(요삼 1:3~4). 그러므로 생명으로 생명을, 사랑으로 사랑을 드러나게 하자.

 

 현재보다 장차 큰 일꾼으로 성장된 모습을 보신 예수님

42: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연약한 부분도 감싸고, 실패도 보둠으며, 장차 사도로 성장될 것을 기대하시는 예수님

이제 믿음의 출발선에 서서 항해를 시작하는 베드로의 모습은 연약하고 약점투성이었다. 주님을 따르고 배우지만 쉽게 변하지 않는 충동적인 면들, 연장자로서의 고집, 스스로의 한계를 미처 깨닫지 못한 것 등 베드로에게는 인간적인 눈으로 보았을 때 사도라 부르기에 합당치 않았는지 모른다. 그러나 주님은 그를 주님의 수제자로 세우시고 성장시키셔서 초대 교회에 복음의 역사 가운데 큰 역할을 감당하게 하였다(2:41, 4:4, 15:6~7, 2:9).

 

     #. 르네 마그리트의 천리안

눈으로는 새알을 보면서 화폭에는 새를 담아낸 르네 마그리트의 천리안처럼 우리의 제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큰 일군으로 성장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하겠다.

 

     #.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 피렌체 두오모 성당의 둥근 지붕 큐폴라

463개의 계단. 한 발 한 발 걸어 그 위에 올라서면 머리 위엔 하늘이, 눈 앞엔 아름다운 중세 거리가 펼쳐진다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 피렌체 두오모 성당이란 이름으로 익숙한 그 성당은 인생에 한 번은 꼭 들러야 할 곳으로 손꼽힌다.

그 중 특히나 아름다운, 그래서 성당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두오모의 둥근 지붕큐폴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유럽의 성당이 대부분 그렇다지만 이 두오모 성당 역시 평민들의 피와 땀이 모여 오랜 세월에 걸쳐 지어졌다. 13세기에 설계하고 착공했고, 14세기에 이르러서야 건축물 대부분이 완성되었는데 당시엔 성당을 덮어낼 거대한 돔을 지을 기술이 부족했다고 한다.

 

그들은 어떻게 했을까?

피렌체 사람들은 기다렸다. 언젠가 기술은 진보할 것이고, 끝내는 돔과 함께 성당은 완성되리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기다린 세월은 무려 100년이나 된다.

그렇게 해서 훗날100년까진 아니더라도, 어느 그 훗날, 463개의 계단. 한 발 한 발 걸어 그 위에 올라서면 그렇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들.

우리가 간절히 기대하는 놀라운 복음의 역사가 지금의 제자들의 손에 의해서 매우 아름답게 완성되지 않을까?

 

주안에서 바르게 성장된 제자는 우리에게 자랑의 면류관이 된다(132:18, 4:8~9). 

주님은 우리에게 면류관을 주시는 분이시다.

생명의 면류관은 시험 중에도 인내하고 죽도록 충성하는 자에게 주신다(1:12, 2:10).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은 목회와 관련하여 성도를 세우고 도와준 자에게 주신다(벧전 5:4).

의의 면류관은 신앙의 지조를 지키고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는 사람에게 주신다(딤후 4:8).

썩지 아니할 면류관은 절제하며 자신을 지킨 사람에게 주신다(고전 9:25).

기쁨의 면류관은 전도와 관련하여 그리고 제자를 주 안에서 잘 양육한 사람에게 주신다(살전 2:19~20, 4:1).

토마스 브룩스는 말하기를 "그리스도의 옷은 찢겨져 나뉘었지만, 그리스도의 면류관은 결코 깨져 나누어지지 않을 것이다"고 했다.

 

     #.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3:11, 22:12)

유명한 아이언사이드 목사는 성도들이 앞으로 받을 면류관과 상급에 대하여 설교를 하고 내려오니 한 부인이 목사님께 다가와서 질문을 했다.

목사님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장차 상을 받고 면류관을 받기 위해서 하시는 것인가요?”

, 저는 면류관을 위해서 일을 합니다.”

저는 그 말씀에 실망을 했습니다. 저는 목사님이 주님을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일을 하시는 줄 알았지요.

그러자 아이언사이드 목사가 다음과 같이 대답을 했다. “그러나 내가 앞으로 받을 면류관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저의 면류관을 어린 양되신 예수님 발 앞에 바치며 경배를 하려고 하는 것이지요.

 

요한계시록 4장에서 24장로들이 면류관을 받았으나 그 면류관을 주님께 던진다. 요한계시록 19장에는 주님이 많은 면류관을 쓰고 계신다(4:10, 19:12).

 

마무리

부모들은 교사들이 부모와 같은 마음으로 학생들을 대하는 선생님을 만나기를 학기초 마다 고대한다. 그렇다면 영적인 스승은 더 간절하지 않을까?

 

제자는 스승의 수준을 넘기가 어렵다그러기에 스승인 우리는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우리의 표준은 예수님이시다. 또 바울 사도이다. 그러므로 더 온유하고 더 겸손하게 더 열정을 가지고 배워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교사가 되자.

 

구원받을 때는 죄인의 모습으로 구원하신다. 하지만 구원받은 후에는 쓰시는 것은 아무나 쓰시지 않는다. 준비된 사람을 쓰신다

(딤전 2:15)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일군으로 인정된 자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 말씀을 혼탁하게 하지 말자, 혼잡케 하지 말자.

-. 진리를 구분할 수 있는 분별의 눈과 귀를 갖자.

     #. "부끄러울 것이 없는"

-.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기를 소망하며 살자.

-. 빛이신 주님 앞에서 그리고 사랑이신 주님 안에서 행하자.

     #.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 비싼 그릇도 쓰시지 않는다. 좋은 음식도 담을 수 없다(딤후 2:3, 2:21~22).

     #. "자신을 드리기를 힘쓰라"

-. 우리 자신을 주님을 위해서 더 힘써야 할 것은 주님께 쓰임을 받다가도 주님을 위해 드리지 않으면 주신 모든 것을 다시 가져가는 경우가 있다(고전 6:19~20).

-. 사나 죽으나 주님 뜻대로가 아니라 생각이 나면 하고, 내 생각대로, 내 방법대로 하는 것은 힘쓰는 것이 아니다(14:7~9).

-. 완전히 드리면 주님이 완전히 사로잡을 것이다.

-. 내 생애를 주님을 위해서 철저히 굴복시키면 주님이 나를 책임지실 것이다. 이것은 주님이 정하신 법칙이다.

 

(17:19)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 하나님의 손에, 능력에 붙잡힌 바 되어서 쓰임이 될 수 있어야 한다.

-. 만약 쓸모 없는 사람이 된다면 불쌍한 사람이 된다.

-. 내 육체를 쳐서 복종함은 혹시 내가 버림이 될까 하노라(고전 9:27).

-. 교사로서 일을 할 수 있고 남에게 가르칠 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실격자가 되어 쓸모없는 인생이 될 수 있다.

-. 우리는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는, 내 육체를 쳐서 주님께 굴복시키는 그런 마음을 가져야 되겠다(고전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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